통영 문화동 벅수와 세병관 문화·유적

- 문화동 벅수

통영 세병관 입구에 있는 문화동 벅수입니다.

이 돌장승은 마을의 전염병과 액운을 막아주는 비보장승입니다. 앞면에 '토지대장군'(土地大將軍)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 '광무십년병오팔월일동락동입'(光武十年丙午八月日同樂洞立)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문화동 벅수가 세워진 해는 '광무십년병오'(光武十年丙午) 즉 1906년이며, '동락동'(同樂洞)은 문화동의 옛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돌장승 가운데 유일하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색이 칠해져 있지 않았는데, 1968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면서 보기 좋게 한다고 색을 칠했다고 합니다. 예전보다 많이 퇴색되었지만, 아직도 눈에 확 들어오는 색감이 좀 당황스럽습니다.

- 부분

문화동 벅수는 그 모습이 묘합니다.

머리에 쓴 벙거지와 세 갈래로 흘러내린 수염은 노년의 모습이고, 가지런한 이와 '八'자의 송곳니, 듬직한 콧등은 장년의 모습입니다. 지나치게 양쪽으로 솟은 입가나 눈동자 주변의 뚜렷한 검은 눈자위는 조금 괴기스럽습니다.

- 세병관

문화동 벅수에서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 세병관이 있습니다.

- 지과문

출입문인 지과문(止戈門)입니다. '지과'(止戈)는 창을 거둔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에는 전쟁이 그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 두룡포기사비

지과문으로 오르기 전 오른쪽에 두룡포기사비(頭龍浦記事碑)가 있습니다. 이 비는 원래는 두룡포(頭龍浦, 통영의 옛 이름)의 영문(營門)에 있던 것인데, 190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비는 인조 3년(1625년) 제19대 통제사 구인후(具仁垕)가 선조 때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수군(水軍) 본영을 건설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문은 이경준의 간단한 약력과 집안, 그의 사람됨, 영문(營門)을 세운 업적, 그리고 그에 의해서 두룡포가 한낱 어촌에서 일약 훌륭한 요새가 되었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 통제사비군

두룡포기사비 위쪽 조금 높은 곳에 통제사비군(統制使碑群)이 있습니다. 이 비들은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린 비입니다.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58기를 이곳에 모아놓았습니다.

비의 표제(表題)는 송덕비(頌德碑), 추사비(追思碑), 거사비(去思碑), 사적비(事蹟碑), 불망비(不忘碑), 타루비(墮淚碑), 유애비(遺愛碑), 선정비(善政碑) 등으로 다양합니다.

- 타루비

그 가운데 비의 표제를 타루비로 쓴 비입니다.

- 세병관

세병관(洗兵館)은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통영으로 옮긴 이듬해인 선조 37년(160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여수 진남관, 경복궁 경회루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약 290년 동안 삼도(三道, 경상·전라·충청도) 수군(水軍)을 총지휘했던 곳입니다.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지금도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기삽석통

세병관 앞뜰에 기삽석통(旗揷石桶)이라고 하는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위해 깃대를 고정하는 돌기둥이 있습니다. 

이 돌기둥은 정조 10년(1786년) 제142대 통제사 류진항(柳鎭恒)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원래는 세병관 뜰앞 좌우에 2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서쪽 1기만 남았습니다.

- 석인

세병관 뜰에 석인(石人)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석인은 숙종 27년(1701년) 제77대 통제사 류성추(柳星樞) 때 액막이로 만든 것으로 추측됩니다. 세병관 앞 장대석 석축 해체 과정에서 5기를 발굴하여 4기를 이곳에 설치하였습니다.

- 세병관

세병관을 들어설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엄청나게 크게 쓴 '세병관'(洗兵館)이라고 쓴 현판입니다.

- 현판

'세병관'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세병마행'(洗兵馬行)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라 합니다. 이 시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두보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시의 마지막 글귀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찌하면 장사를 구하여 은하수를 끌어와서 갑옷과 무기를 깨끗이 씻어 영원히 쓰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세병관... 지과문... 이 이름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것을 얼마나 기뻐했으며,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염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내부

건물 내부 바닥에 우물마루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왕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습니다.

- 내부

궐패를 모시는 공간은 우물천장과 3면에 창호문을 만드는 등 다른 공간과 구분하였습니다. 창호문 위쪽에 사군자와 옛날 군인들의 전투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 뒤쪽에서 바라본 세병관

세병관을 나와 뒤쪽 언덕에 오르면, 강구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 세병관 뒤쪽에서 바라본 서포루

그리고 눈길을 돌리면, 서피랑과 서포루가 마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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