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유포석보 문화·유적

- 유포석보로 올라가는 길

울산(蔚山) 북동쪽 바닷가에 대게와 가자미로 이름난 정자항(亭子港)이 있습니다. 이곳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유적이 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유포석보(柳浦石堡)입니다.

그런데 유포석보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자항 쪽에서 정자해수욕장 쪽으로 가다 보면 도로변에 유포석포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번이 울산 북구 정자동 350-3인 민가가 있습니다. 이 집 옆 담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유포석보가 있습니다.

- 유포석보

유포석보(柳浦石堡)는 정자항 뒤편 작은 언덕에 있습니다.

예전에 정자항 일대를 유포진(柳浦津)이라 하였습니다. 이곳 언덕에 돌로 쌓은 작은 성(城)이라고 해서 유포석보(柳浦石堡)라고 하였습니다. '정자'(亭子)라는 지명은 오래전 마을 가운데에 스물네 그루의 포구나무(느티나무)가 정자를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 소나무

이곳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높이는 7m 남짓 되어 보입니다.

- 유포석보

조선 시대의 보(堡)는 제진(諸鎭)의 보조적 방어 시설로서 최전방에서 적의 동태 감시와 인근 주민 대피, 유사시 전투를 하는 소규모의 성을 말합니다. 보 주변에 봉수가 설치되어 신호나 포성 같은 소리를 통하여 주변 주민과 인근 지역, 그리고 내지(內地)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유포석보는 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 정분(鄭苯)의 건의로 왜구를 막기 위해 문종 1년(1450년)에 목책성(木柵城)으로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그다음 해인 문종 2년(1452년)에 정분이 목책성에서 석성(石城)으로 바꾸도록 건의하였습니다. 세조 1년(1455년)에 기존의 목책으로부터 5리 떨어져 있는 곳에 석성을 쌓기 위한 성터를 정하였고, 세조 5년(1459년)에 석성이 완공되었습니다.

이곳은 왜구 방어를 위한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의 지휘 아래 병영과 울산·경주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수비했습니다.

- 고적 용지 조사서

위 사진은 일제강점기인 1930~1936년에 작성된 고적 용지 조사서의 유포석보에 대한 부분입니다. 당시 이곳은 유포성지(柳浦城趾)라는 이름으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유포석보

유포석보는 지금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정자항의 방파제를 만들 때 이곳 성벽의 큰 돌들을 빼내어 사용하여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 유포석보

유포석보의 전체 둘레는 750m 정도로 추정됩니다.

구릉 기슭의 낮은 평지와 계곡을 안으로 삼고, 그 주위를 좁게 성벽을 쌓았습니다. 현재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의 성벽 높이는 2.2m 정도입니다.

- 유포석보에서 바라본 정자항

유포석보가 있는 언덕에서 이곳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앞바다는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朴提上)이 왜국에 볼모로 간 왕자 미해(美海, 또는 미사흔(未斯欣))를 구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장하여 떠난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유포석보

유포석보를 한 바퀴 둘러봅니다. 흔적만 남은 성벽 위의 길을 걷습니다.

- 유포석보 옆 빈터

성벽 옆에 평편한 곳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유포석보

이곳 성벽 위의 길은 그다지 길지도 않고 평평하여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기분 좋은 길입니다.

- 마을로 내려가는 길

마을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 마을에서 바라본 유포석보

마을로 내려와서 유포석보를 바라봅니다. 올라갈 때 언덕에 있던 소나무가 멀리 바라보입니다.

유포석보는 바닷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군이 관리 운영한 성(城)이었다는 점과 조선 시대 최초로 조성된 석보(石堡)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