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구 러시아 공사관 문화·유적

- 정동 구 러시아 공사관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에 잠시 짬을 내어 정동(貞洞)을 찾았습니다.

정동(貞洞)이란 이름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합니다. 능은 1408년(태종 8년) 태조의 승하 후 도성 밖 사을한(沙乙閑)의 산기슭으로 옮겨졌으나, 원래의 자리에 '정릉동(貞陵洞)' 혹은 '정동(貞洞)'이라는 지명을 남겨놓았습니다.

정동에는 몇몇 외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대사관 바로 옆에 정동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 구(舊) 러시아 공사관이 있습니다.
- 구 러시아 공사관

구 러시아 공사관은 경복궁과 경운궁(덕수궁) 등 서울 사대문 안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건물은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되었습니다. 건물 규모나 대지 규모에서 당시 미국·영국·프랑스·독일 공사관보다 컸다고 합니다.

조선의 국권이 일본에 피탈된 후 1925년부터 1950년까지 소비에트연방 영사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어, 지금은 외벽 일부와 3층 전망탑만 남아 있습니다.
- 배치도

구 러시아 공사관은 구한말 고종의 후원하에 활약했던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 1860~1921)이 설계하였습니다. H자형 본관과 호위대 막사 등이 있었으며, 본관은 르네상스풍의 2층 벽돌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본관 한쪽에는 전망탑을 세웠고, 정문은 개선문 양식이었다고 합니다.
- 구 러시아 공사관(1900년경)

구 러시아 공사관은 조선 말 아관파천(俄館播遷)과 관련이 깊습니다.

을미사변(1895년)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이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세자(순종)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합니다. 러시아 제국을 한자로 '아라사'(俄羅斯)라 하였으니, '아관'(俄館)이란 러시아 공사관을 뜻합니다.
- 구 러시아 공사관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3층으로 된 전망탑 부분입니다.
- 구 러시아 공사관

남아 있는 건물의 서쪽 면 모습입니다.
- 구 러시아 공사관

남아 있는 건물의 북쪽 면 모습입니다. 전망탑 부분이라 그런지 어느 쪽에서나 전체적인 모습이 비슷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진정한 자주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외세에 의존한 나라는 모래성과 같이 허약합니다. 아관파천의 현장인 구 러시아 공사관은 이런 냉엄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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