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과 전형필 선생. 문화·유적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 그리고 간송미술관을 꼽습니다.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시대 사재를 털어 수집한 수많은 귀중한 문화재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193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1971년 10월부터 매년 5월과 10월에 각각 2주씩 소장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전시회에 맞춰 '간송문화'라는 도록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전시 작품 전체를 담고 있는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도록에는 전문가와 미술관 학예연구원들의 수준높은 논문이 수록되어 학술지의 성격까지 띄는 것이 특징입니다.

미술관의 중심건물인 보화각에는 전형필 선생이 평생동안 수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데, 소장 유물 다수가 국보 및 보물급으로 문화재사적으로도 중요한 미술관입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국보로 지정된 '훈민정음'(70호)과 '동국정운 권1,권6'(71호)을 비롯해, '금동계미명삼존불'(72호), '금동삼존불감'(73호), '청자압형연적'(74호),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135호) 등이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을 생각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간송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입니다.

간송은 증조부때부터 종로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석 부호가의 상속권자로,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대학졸업 직후인 25세때(1930년)부터 고증학자 오세창과 교유하며, 오로지 우리 문화재 수집과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 고서화나 도자기 등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문화재 수집을 본격화 하면서 1938년 일제의 강력한 물자통제령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보화각을 세워 문화재의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간송과 우리 문화재에 얽힌 일화(逸話)는 참으로 많습니다.

1942년 '훈민정음' 원본을 찾아낸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당시는 조선총독부가 한글말살정책을 한참 펼칠 때였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찍어낸 '훈민정음' 원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안동으로 내려간 간송은 당시 1만원에 달하는 거금에 이를 구입하여 일제 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비밀리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송과 존 개스비 컬렉션에 관한 일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14년을 전후해서 일본 도쿄에 와서 정착한 영국인 변호사였던 존 개스비는 고려청자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면서 고려청자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후 그는 서양인으로서 최고로 안목있는 고려청자 수집가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간송은 존 개스비가 언젠가는 그의 고려청자 컬렉션을 모두 처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혹시 그가 고려청자를 처분할려고 하면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연락해 줄 것을 백방으로 부탁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인이나 기타 외국인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즉각 손을 써서 인수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1937년 2월에 개스비와 가까이 접촉하고 있던 도쿄의 한 골동상으로 부터 개스비가 고려청자들을 처분하려고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간송은 2월 26일 도쿄로 출발하였습니다. 도쿄에서 여관으로 직행한 간송은 비로소 개스비가 왜 그의 소중한 컬렉션을 전부 처분하려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1936년 2월 26일에 발생한 2·26사건을 보고 개스비는 일본이 멀지 않아 미국과 영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보고, 그는 급히 중요한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영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간송은 중간 골동상의 안내를 받으며 도쿄 고지마치의 호화저택에 살고 있는 개스비를 찾아 갔습니다.

이때 개스비도 전부터 한국의 고미술품 수집가로서의 간송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한국의 훌륭한 수많은 고미술품들이 한일합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인 손에 넘어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에, 간송이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보관해 왔던 고려청자를 인수하겠다니 한편으로는 반가웠던 것입니다. 그때 간송이 기와집 50채 값에 해당하는 거금을 지불하고 존 개스비의 고려청자 컬렉션을 전부 인수하여 국내에 되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만일 간송이 그때 즉시 달려가지 않았던들 개스비 컬렉션은 일본의 재벌 수집가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오늘날 여러 점의 국보와 보물 고려청자를 되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찾아 온 개스비 컬렉션 중 대표적인 고려청자로는 '청자기린형향로'(국보 제65호), '청자압형연적'(국보 제74호), '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보물 제286호), '청자상감국목단당초문모자합'(보물 제349호)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국보급이 여러 점이나 포함돼 있던 개스비 컬렉션을 인수하기 위해 간송은 선대로부터 물려 받았던 공주지방의 농장을 급히 처분해야 했다고 합니다.

도쿄에서 서울로 운반된 개스비 컬렉션은 1936년 보화각(간송미술관)에 들어간 후 오늘날까지 소중하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핑백

  • 간송미술관: 서화대전에 다녀와서 | 나비사슴의 보물창고 2011-08-07 20:21:34 #

    ... 간송미술관 관계자들과 좀 아시는 분^^? http://blog.kdongwon.com/1229 **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 대해서  간송미술관과 전형필 선생. http://hanulh.egloos.com/1770727 문화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의 ‘명품세상’ : 간송미술관 소장품들(완전 국보가 많음;) http://blog.empas.com/o ... more

덧글

  • Hikaru 2005/09/24 23:39 # 답글

    간송의 열정이 우리 문화의 보전에 큰 기여를 한 셈이군요!
    감동에 마음이 찌릿 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이러한 미술관이 있었다니, 기회를 만들어 꼭 찾아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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