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청자와 백자사이의 도자기.

분청사기 장군, 15-16세기, 높이 15.5cm,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우리들이 분청사기에서 받는 느낌은 '대담하고, 서민적이며, 그리고 동적(動的)이면서도 현대적이다'라는 것입니다.

분청사기는 조선시대 전기 200년동안 제작되었나 그 당시에는 이 도자기에 대한 명칭이 없었으며, 1930년대에 와서야 고유섭 선생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분청사기는 비교적 거친 회색의 태토에 다양한 형태로 분(粉)을 장식한 후 녹색을 띠는 반투명 유약을 바른 일련의 도자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분청사기 편병, 15세기 전반, 높이 22.7cm,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분청사기는 재료와 장식기법 등 고려청자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나, 고려청자에 비해 덜 세련되게 만들어졌습니다.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장식기법인 상감기법을 채용하는 등 고려청자의 전통을 답습하였지만, 고려청자가 고전적인 우아함을 나타낸다면 분청사기에서는 실험정신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분청사기는 서민적인 느낌과는 달리, 특히 15세기 동안은, 주로 중앙정부나 지방관청에서의 사용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 만들어진 다수의 접시나 대접에서 '장흥고', '내섬시' 등의 관청명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청사기 항아리, 15세기 전반, 높이 37.6cm,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분청사기는 만들어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상도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은 전형적이며 규칙적인 인화문기법을 보여주는 반면, 전라도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느낌을 주는 선각기법이나 박지기법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청도 계룡산 일대에서 만들어진 것은 두터운 분(粉)위에 철화로 문양을 그린 분청사기로 유명합니다.
분청사기 제기, 16세기, 높이 13.5cm,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분청사기와는 달리 조선백자는 이미 1460년대에 수도 한양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 분원가마를 운영하여 조달하였습니다. 분원은 조선백자 제작의 중심지였으며, 19세기 후반까지 운영되었습니다. 16세기에 백자에 대한 수요가 사대부나 한양지역을 넘어 확대되자 지방에도 백자가마가 도처에 생겨나고, 심지어는 분청가마에서도 백자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16세기의 분청사기에는 귀얄기법이나 덤벙기법이 나타나는데, 이는 값싸게 백자를 대신할 대안으로 출현하였습니다.

16세기말에 이르면 분청사기는 백자에게 점차 자리를 넘겨주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17세기에 임진왜란으로 황폐화된 조선에서의 도자기산업이 재건될 때 단지 백자만 생산되어 분청사기의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Assistant Curator인 이소영씨의 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by 하늘사랑 | 2005/10/28 08:21 | 옛 도자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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