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안사터 문화·유적

- 승안사터 삼층석탑

양군 수동면 우명리에는 석불과 삼층석탑만이 남아 있는 쓸쓸한 폐사지가 있습니다.

다른 폐사지들처럼 승안사터를 찾아가는 길도 역시 쉽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승안사터로 오르는 길목의 도로가 확장공사 중이어서 도무지 승안사터 가는 길의 입구를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번 같은 길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물어서야 겨우 승안사터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km 남짓한 아늑한 산길을 올라가면 그 길의 끝닿은 곳의 아늑한 분지에 절터가 있습니다. 승안사터(昇安寺址)로 알려진 이곳에는 현재 하동 정씨 문중 묘소를 관리하는 고가와 정여창의 묘소 등이 있으며, 이곳에 한 때 승안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석불과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 승안사터 석조여래좌상

하동 정씨 문중 묘소를 관리하는 고가 앞에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있습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높이가 2.3m나 되는 거구로 대형화된 고려 초기의 전형적인 불상인데,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고 하체는 희미하며, 머리가 몸체에 비해 훨씬 커서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더군다나 이 석불은 최근에 세운 듯 보이는 보존각 속에 답답하게 갇혀있는 있으니 보기에도 안쓰러웠습니다. 오른팔도 잃어버리고 목마저 부러졌는데, 이제 보호각으로 인해 햇살마저 듬뿍 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햇살 속에 환하게 피어났을 미소를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 승안사터 삼층석탑

그 오른쪽 밤나무 숲에 서 있는 탑으로 발길을 돌리면 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화강석으로 탑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참으로 보기가 민망합니다. 탑과의 비례도 생각하지 않은 채 굵직굵직한 것들로 높게 세워 놓았는데 과연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비록 탑 주위의 화강석 울타리로 인해 아름다움이 반감되기는 하였으나, 승안사터 삼층석탑은 기단과 탑신부 곳곳이 아름답게 조각된 탑입니다. 이 탑은 높이 4.3m의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고려 탑이 그렇듯 기단과 탑신의 균형을 다소 잃었지만 장식적인 비중은 커졌습니다.

1962년 탑을 현위치로 옮길 때 1층 몸돌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으며, 그 안에 있던 문서에 의해 조선 성종 25년(1494년)에 탑을 옮겨 세웠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삼층석탑 상층기단의 조각상

상층기단부에는 불상이나 보살상, 비천상을 양각하였는데, 각 조각들은 차와 꽃을 공양하거나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불보살 조각은 나라 안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팔부신중을 새기는 통일신라시대의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 삼층석탑 1층 몸돌의 조각상

1층 몸돌 각 면에는 덜 세련된 솜씨로 새겨진 사천왕상이 탑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은 부처님 나라에 그 어떤 더러움이나 악함도 들어갈 수 없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장수입니다.

남계서원 별사에 배향된 유호인(兪好仁, 1445-1494, 김종직의 문인으로 자는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이 이곳 승안사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자는 계온(季渟), 호는 점필재(佔畢齋))의 문집인 '점필재집(佔畢齋集)' 시집 제10권에는 이 때 그에게 보낸 시 한 편이 남아 있는데, '도연명체를 본받아 극기를 위문하다. 극기가 이 때 승안사에서 훈욕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效淵明問克己克己時在昇安寺熏浴理疾]'라는 긴 제목의 시에는 절집 모습은 언급되어 있지는 않고 다만 유호인이 피부병을 앓았는지 난초의 잎을 물에 넣어 끓이는 난탕(蘭湯)으로 훈욕을 한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승안사터는 탑과 불상만 남았을 뿐 선비들의 묘소와 재실 그리고 밤나무 숲으로 변해버린 채 장대석 하나 남아있지 않은 절터이지만 김종직이 유호인에게 보냈던 시를 떠올리며 당시를 회상해 봅니다.

그대가 사음산에 들어갔다 하는데 / 聞君入射陰
절은 몇째 봉우리에 있는고 / 寺在第幾峯
구름 놀과는 정히 서로 좋겠으나 / 雲煙定相媚
원숭이 학은 누가 능히 따르리오 / 猿鶴誰能從
삼수를 캐는 일이 아니거든 / 得非採三秀
다시 솔바람 소리를 들을 터인데 / 聊後絃松風
난탕은 날로 백 번 끓이더라도 / 蘭湯日百沸
깊은 근심은 다스리지 못한다오 / 幽憂攻未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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