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창고택(鄭汝昌古宅) 문화·유적

- 정여창고택의 솟을대문

대 있는 고장을 말할 때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함양은 안동에 견줄 만큼 학문과 문벌이 번성했던 곳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치원, 김종직, 정여창, 박지원 등 굵직한 인물들이 지방 관리로 함양을 거쳐갔고, 여기 저기에 그들의 자취를 남겼습니다. '우 함양'의 기틀을 잡은 이가 바로 정여창인데, 함양에는 그의 안목과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고택과 서원이 있습니다.

정여창고택(鄭汝昌古宅)은 안의에서 함양으로 가는 중간 지점인 지곡면 개평마을에 있습니다. 남계천 남동부 유역의 비교적 너른 들판에 자리잡은 개평마을은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입니다.

정여창고택은 3,000여 평의 너른 대지 위에 사랑채, 안채, 별당, 가묘, 곳간 등 크게 5개 건물이 샛담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대부분 조선 후기에 중건되었습니다.
- 솟을대문에 걸려 있는 정려를 게시한 문패

솟을대문에는 다섯 명의 효자와 충신을 배출했음을 알리는 '정려(旌閭)를 게시한 문패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끕니다.
- 사랑채

사랑채는 'ㄱ'자 팔작집으로 돌축대가 높직하고 추녀는 활주로를 떠받칠 만큼 날개를 펴서 더없이 시원스럽고, 툇마루 한쪽을 약간 높혀 누각의 난간처럼 둘렀습니다. 사랑채의 높은 축대는 바닥이 높은 안채와 아래채에 수평을 맞추기 위하여 쌓았습니다.
- 사랑채 뜰

사랑채 앞마당은 돌을 모아서 산과 골짜기를 만들고 갖가지 나무를 심어 집터에 딸린 숲처럼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 안채
- 안채 마루

사랑채 옆의 일각문을 거쳐 안채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남향한 '一'자형의 큼직한 안채는 경북지방의 폐쇄적인 공간과는 달리 개방적으로 분할되어 있어 집이 밝고 화사합니다.
- 안채 앞마당

안채 왼쪽에는 아래채가 있고, 안채 뒤편으로 가묘와 별당, 안사랑채가 따로 있습니다.

사랑채는 정병호 씨의 고조부가 중건하였으며, 안채는 사랑채보다 건축연대가 더 올라가서 약 300년 전에 청하현감을 지낸 선조가 중건했다고 합니다.

요사스러운 치장이 없고 옛 손길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정여창고택은 양반가의 정갈한 기품이 가득하며, 중요민속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여창고택의 유적명칭은 지정 당시의 건물주 이름을 따서 '함양 정병호 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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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leasure from Emptiness : 동계고택(桐溪古宅) 2007-12-23 10:10:05 #

    ... 덧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느 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 동계고택 사랑채사랑채는 ㄱ자형으로 우측전면에 누마루를 두었는데, 이것은 함양에 있는 정여창고택의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루를 높여 지었는데 이것은 평지에서 기단만을 설치할 경우 집이 낮아보이는 것을 우려한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집을 높이다 보니 섬돌을 ... more

덧글

  • ftrt 2007/04/12 18:03 # 삭제 답글

    .. 집 사진은 잘 보았구요..
    하지만 뭐..
    도움은 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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