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터를 찾아서...

▲ 보문사터 전경으로, 가운데 금당터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목탑터가 보입니다.

주 동쪽 관문에 해당하는 명활산(明活山)과 낭산(狼山) 사이에 있는 보문평야 동쪽에 보문사터로 전해지는 곳이 있습니다. 이 부근에서 '보문(普門)'라고 씌어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보문사가 있었으리라 추정할 뿐 절에 대한 기록으로 따로 전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곳을 찾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 절터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각종 유물과 유적도 논 곳곳에 넓게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추수 후에는 어림짐작으로나마 이곳을 찾아갈 수 있으나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는 농사철에는 각종 유물들의 위치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혹 위치를 알아도 가까이 다가가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문사터를 찾아가는 일은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겨울철이 좋습니다. 비록 황량한 들판에 차가운 바람만 불어대는 이곳이지만 사방을 둘러보면 진평왕릉과 황복사터 삼층석탑, 그리고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낭산 등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어 쓸쓸함과 허전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습니다.

▲ 금당터

지금 보문사터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와 좌우 쌍탑의 목탑 자리가 남아 있으며, 자세히 살펴보면 각종 석재들이 논둑길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위 논보다 1m 가량 높은 흙으로 쌓은 축대 위의 금당터에는 건물의 기단석과 초석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목탑터는 금당터 앞의 높은 단 위에 남아 있고, 특히 서탑지 가운데에는 연화문이 새겨진 중심 초석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끕니다.
▲ 연화문 당간지주

금당터의 서쪽과 북쪽 제법 먼 거리에는 두 기의 당간지주가 서 있습니다. 서쪽의 당간지주는 보물 제123호로 지정된 높이 3.8m의 당간지주이며, 북쪽의 당간지주는 보물 제910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연화문이 새겨진 높이 1.46m의 당간지주입니다.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렷한 연꽃 문양

북쪽에 있는 연화문 당간지주는 반쯤 흙에 파묻힌 채 서 있는데, 당간지주 위쪽에 아름다운 연꽃이 한 송이씩 새겨져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듭니다. 이 당간지주가 서 있는 위치를 볼 때 과연 보문사의 당간지주였는지 의문이 듭니다.
▲ 보문사터 석조

금당터에서 얼마되지 않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 수조는 절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받아 두기 위해 돌로 만든 물통으로, 큰 돌 하나의 내부를 파내어 물을 담도록 만들었습니다.

윗 부분의 가장자리보다 밑부분이 약간 좁아져 있고, 아랫면은 평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형태는 크지만 안팎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주변 유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보물 제6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보문사터 당간지주

보문사터 당간지주는 양 기둥이 62㎝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며, 양쪽 기둥 가운데 하나는 윗부분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한쪽만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위, 중간, 아래 세 곳에 있습니다.

매우 소박한 모습의 이 당간지주는 전체적인 형태가 가늘고 긴 모습이지만 안정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입니다.

by 하늘사랑 | 2007/01/26 08:04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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