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27일
불국사(佛國寺)

신라시대의 여러 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단연 경주 불국사를 꼽습니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새로운 사찰의 건립 소원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사찰 건립 후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였는 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후 경덕왕 10년(751년)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오늘날 불국사에 상징물로 알려진 탑과 석교 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김대성은 이 공사가 착공된 지 24년 만인 혜공왕 10년(774)에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사망했으며, 그 뒤 불국사는 국가적 사업으로 이어져 착공 30년 만에 완성을 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이러한 기록들로 미루어 볼 때, 처음에 소규모로 창건되었던 불국사를 통일 뒤 재력이 풍족해진 경덕왕때 김대성이 대찰로 확장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라 호국 불교의 도량으로서 전통을 이어온 불국사는 조선 선조 26년(1593) 왜병의 침입시 방화로 인해 650여 년간 내려오던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그 후 대웅전 등 일부의 건물이 다시 세워져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쳐 창건 당시의 건물터를 발굴 조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세움으로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이상적 피안의 세계로 불국사를 그렸는데 그러한 불국을 향한 염원은 세 가지 유형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석가불의 사바세계를, 그리고 '아미타경'에 근거한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전을 중심으로 하는 비로자나불의 연화장(蓮華藏)세계입니다.

불 국사를 찾는 사람들이 청운교와 백운교, 그리고 연화교와 칠보교의 아름다움에 눈이 팔려 자칫 놓치기 쉬운 유물로 당간지주와 석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당간지주와 석조는 연화교와 칠보교 앞 널찍한 뜰에는 있습니다. 당간지주는 두 쌍으로 크기가 서로 다른데, 이는 불국사가 여러 차례 중수되는 동안 각기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탓으로 짐작됩니다.

불국사 석조는 신라 석조 가운데서는 보기 드물게 큰 것으로, 둔탁하고 장중한 돌로 만들어졌음에도 오히려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이 석조는 특이하게도 바로 옆에 석조를 덮었던 돌뚜껑이 놓여 있습니다.
천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불국사에서 우리는 다보탑(국보 제 20호)과 석가탑(국보 제 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 23호), 그리고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 22호)를 보고 있으면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뛰어난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으며, 아울러 비로전에 있는 금동 비로자나불(국보 제 26호)과 극락전에 있는 금동 아미타여려좌상(국보 제 27호)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은 찬란했던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by | 2007/01/27 08:18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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