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사터의 사천왕상

-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채유사천왕상전(彩釉四天王像塼)

국통일을 이룬 신라는 경주 낭산(狼山) 서쪽 기슭에 호국 사찰로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습니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는 이 사천왕사터에서 부조틀로 찍어내어 표면에 갈색의 유약을 입힌 후 구운 사천왕상(혹은 팔부신중)이 새겨진 전(塼)돌이 출토되었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이 전돌에 새겨져 있는 사천왕상은 전체적으로 반부조(半浮彫)이지만 얼굴, 가슴, 손, 무릎 등은 고부조(高浮彫)로 하여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사천왕상이 악귀를 밟고 서 있는데 반하여 이 사천왕상은 악귀를 깔고 앉은 좌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채유사천왕상전(彩釉四天王像塼)

이 사천왕상을 조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은 신라시대 뛰어난 조각가 양지(良志)스님입니다. 양지스님은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선덕왕 때 자취를 나타냈다는 기록과 사천왕사의 사천왕상 등의 작품으로 볼 때 삼국통일 전후에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천왕상만 보아도 양지스님은 비록 신분은 스님이었지만 대단한 예술 조각가였음을 알 수 있는데, 양지스님에 대해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지스님은 신기하고 괴이하여 다른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많았고, 잡다한 기예에도 두루 통달하여 그 신묘함이 비할 데가 없었다. 양지는 또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영묘사의 장륙존상과 천왕상, 또 전탑(殿塔)의 기와와 천왕사(사천왕사) 탑 아래의 팔부신장, 그리고 법림사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또한 영묘사와 법림사 두 절의 현판을 썼으며, 일찍이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이와 함께 3천 개의 불상을 만들어 그 탑을 절 가운데 모시고 공경했다.'
- 사천왕사터 목탑터 기단부 추정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작년부터 사천왕사터를 발굴조사하고 있는데, 회랑터와 함께 조사한 서쪽 목탑터는 발굴 결과 고대 신라 예술의 숱한 비밀을 풀어줄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겨우 남은 서쪽 계단 아래 전돌(벽돌) 벽체를 통해 전혀 몰랐던 고대 한반도 목탑의 기본 구조가 밝혀졌습니다.

수백년 전 허물어진 뒤 흙에 덮여 언덕 모양으로 변한 사방 12.4m의 정사각형 탑 기단부는 놀랍게도 그냥 돌로 쌓지 않고 당초무늬가 새겨진 전돌 수백 개를 자연석 기둥 사이의 공간에 채워 넣어 사방을 둘렀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게다가 전돌은 동서남북에서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혹은 팔부신중)이 새겨진 전돌과 맞붙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대목은 사천왕상이 목탑 기단부 각 벽면마다 4구씩 안치됐음이 드러났는데, 이렇게 되면 사천왕사 서탑만 해도 모두 16구에 이르는 사천왕상이 있었던 셈이 됩니다.
-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사천왕상 (사진출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사천왕상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날개관을 쓰고 있으며, 부릅뜬 눈, 축 늘어진 귀, 익살스런 치아 등이 더욱 생동감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섬세하게 표현된 갑옷과 화려한 복식,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화문장식 등도 매우 정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냅니다.
- 발굴 중인 사천왕사터의 모습으로, '방치된 신라 옛 사찰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 4월 25일 부터 2009년까지 사역의 범위와 가람배치, 각 건물지의 성격규명을 목적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황룡사터 목탑의 경우 13세기 몽고 침입 때 깡그리 불타버려 기단 구조 등이 명확히 드러난 바 없고, 국내 고대 목탑 모형을 받아들인 7세기 일본 나라시대의 고찰인 호류지나 야쿠시지도 기단부는 자연석으로 채운 데 불과하므로, 사천왕사 목탑을 신라 장인들이 얼마나 공들여 독창적으로 쌓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논쟁거리 하나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사천왕상전에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진 신상이 정말 사천왕상이냐 하는 것입니다. 신라인들이 당과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불국토를 수호하는 사천왕 신앙을 들여와 절을 지었을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으나, 이 문제를 놓고서는 사천왕설((四天王像說, 강우방 이대교수)과 사천왕의 여덟 하급신인 팔부신중설(八部神衆說, 문명대 동국대교수)로 엇갈려 있습니다. 보통 다른 탑에서는 사방에 한 개씩만 조각하는 사천왕상이 유독 이 목탑터에서는 같은 조각상 파편들이 여러 개 나오고 있다는 점도 의문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강 교수는 악귀를 밟은 특유의 형상과 사천왕사의 신앙 성격에 비춰 한 면마다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사천왕상전을 붙였다고 본 반면에, 문 교수는 양지 스님이 천왕사(사천왕사)의 탑 하단에 팔부신중을 조각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은 사천왕상 조각을 여럿 만든 전례가 다른 탑에 없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by 하늘사랑 | 2007/02/15 11:13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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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une at 2007/02/19 08:43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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