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09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어느 시대의 것?
석가탑 중수기는 '태평 4년(1024년) 3월 불국사 무구정광탑 중수기'로 시작되는데, 여기에 '두루마리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또 다른) 무구정광다라니경 (두 점)을 탑 안에 넣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또한 보협인다라니경, 사리 여러 점, 각종 향(香) 수십 점, 구리에 금 도금한 ○○(글자 쓴 부분이 부식됨), 금으로 만든 병 등도 넣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중 보협인다라니경은 최근 판독된 '‘묵서지편'에 석가탑 중수기와 함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각종 향이나 금동제품 등은 1966년 석가탑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석가탑 중수기는 발견 당시 110여장에 이르는 종이가 떡처럼 뭉쳐 있어서 '묵서지편(墨書紙片)'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국립중앙박물관은 보존 처리를 시도하다가 '중수기'라는 표현을 찾아내고는 작업을 멈추었는데, 그때까지 석가탑은 창건(751년) 이후 중수(重修)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를 후퇴시킬 수도 있는 민감한 작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석가탑 중수기 존재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은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묵서지편의 본격 판독에 들어 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묵서지편에는 석가탑 중수기와 중수기에도 언급된 보협인다라니경, 보시명공중승소명기(석탑 보수를 위해 보시한 스님들의 이름 등을 적은 글) 그리고 1038년 작성한 중수형지기(重修形止記, 보수 공사의 전말을 기록한 글) 등 최소한 4종으로 구성됐으며, 1022년 1월부터 석가탑 중수를 시작해 1024년 3월 중수를 마무리한 과정을 기록한 중수기에는 중수를 마칠 때 석가탑에 안치한 물품의 목록이 일부 적혀 있는데,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을 넣었음이 확인된다고 밝혔습니다.
박물관측은 중수기 등 묵서지편은 필사본으로 쓴 뒤 접어서 사리함 바닥에 안치했는데 접힌 부분이 부식되면서 현재는 찢어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중수기는 가로 50㎝, 세로 30㎝ 정도되는 종이 5장을 이어 붙였는데 현재는 30장으로 찢겨 있고, 보협인다라니경은 1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석가탑 중수기에 기록된 '무구정광다라니경을 탑 안에 넣었다'는 기록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오영선 학예연구사는 "탑 창건 초기에 넣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고려 때 보수하면서 '도로 집어 넣었다'는 사실을 적었을 수도 있다"며 "신라 것일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말하였으나,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위원은 "금동제사리외함이나 은제사리합 등 석가탑 창건 때 넣은 것이 분명한 사리 유물은 중수기에 적혀 있지 않다"며 "중수기에 적힌 유물은 고려시대 것으로 보는 편이 논리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박 전 실장은 또 "1007년 간행된 목판인쇄물인 계성 총지사의 보협인다라니경과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교하면 보협인다라니경은 그림을 인쇄할 정도로 발달된 인쇄기술로 제작된 반면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인쇄수준은 초보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히면서, 인쇄기술 측면에서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총지사 보협인다라니경 보다 나중에 제작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반론을 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통일신라 때 제작됐다는 또 다른 근거로는 당 나라의 여제 측천무후(則天武后, 재위 685-704년)가 기존의 문자를 혁파하고 새로 만든 측천무후자를 들고 있습니다.
김성구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측천무후 재위 연간에만 사용된 측천무후자가 빈번히 발견된다"고 밝혔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6년 0월 13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었습니다. 폭 6.5-6.7cm, 전체길이 약 620cm의 목판으로 찍은 두루마리로 된 이 불경을 국내에서는 제작시기를 700년에서 751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라니경이란 탑을 조성한 다음 불경을 염송함으로써 성불한다는 뜻에서 이루어진 경전으로서, 탑 속에 이를 넣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다라니경의 전문을 인쇄한 것으로,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그동안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 여부를 둘러싸고 중국 및 일본 학자들과 논쟁을 벌여 왔었습니다.
중국의 저명한 과학사학자 판지싱(潘吉星, 중국과학원자연과학사연구소)교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중국 낙양에서 인쇄돼 신라로 전래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시츠카 하루미치(石塚晴通, 홋카이도대)교수는 770년 인쇄된 일본 백만탑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를 세계 최고로 목판 인쇄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국내에서만 세계 최고로 인정되고 있을 뿐 아직 세계적으로는 그 가치를 공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에는 770년경에 인쇄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알려졌으며, 중국 최고의 목판인쇄물은 868년에 인쇄한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영국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석가탑 안에 넣었다고 기록한 중수기 내용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판독문과 이에 대한 해석문(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해석). ○는 보이지 않거나, 무슨 글자인지 모르는 한자다. '|'는 접힌 부분이 찢겨져 종이가 나뉜 부분을 표시한다. 원문은 세로 방향으로 읽으면 된다.
판독문은 ○○矣臺錦刀冬音一銅鍍金○|○刀冬音一无垢淨光?羅尼(經으로 추정)(이상 첫째 줄) 九偏全金甁一隨錦?一 舍利八○|○金○一隨錦刀冬音一无垢淨光?羅(이상 둘째 줄)尼經一卷隨錦?一右之安藏爲白置|(이상 셋째 줄)
해석은 한자와 이두가 섞여서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략 "대금도 한 묶음과 구리에 도금한 ○, ○칼 한 묶음, 무구정광다라니경…, 금으로 만든 병 하나, 수금대 하나, 사리 8○(과?), 수금도 한 묶음, 두루마리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 한 권, 수금대 하나 등을 이 탑에 안치하옵니다"로 해석된다.
# by | 2007/03/09 11:04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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