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동 철불좌상 문화·유적

- 선원동 철불좌상

상의 팔자도 우리네 인생살이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싶습니다. 어떤 불상은 태어나기도 전에 파불(破佛)로 치부되어 땅 속에 묻히기도 하고, 다른 것은 찬란한 법당 높직한 좌대에 앉아 뭇 중생들의 떠받듦을 받고 있으며, 어느 것은 정갈한 법당에 모셔져 조촐한 대접을 받으며 은자처럼 조용히 지내기도 합니다.

또 옛 절터를 벗어나 박물관 전시실에서 오만 시선을 끄는 불상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 있는 듯 마는 듯 하는 불상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시 햇빛은 보았으나 그 대접이 달갑지 않아 내심 고마움과 섭섭함이 교차는 하는 불상도 있을 듯한데, 바로 선원동 철불좌상이 그런 불상에 해당되지 않나 싶습니다.
- 선원동 철불좌상 얼굴 부분

이 철불은 불국사나 은해사보다도 먼저 생겼다가 임진왜란 때 없어졌다는 굉귀사(宏歸寺)라는 절에 있었다고 전하며, 그동안 절터에 매몰되어 있다가 다시 햇빛을 본 것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하나 그 중에 해방 전 농부가 밭을 갈다가 출토하였다는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이 철불은 영천 선원리에 있는 선정사(禪定寺)라는 절에 모셔져 있는데, 말이 절이지 일반 여염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초라한 곳입니다. 보호각이자 법당에 해당하는 작은 집에 비록 모셔져 있지만 선원동 철불좌상은 윤곽이 뚜렷한 얼굴, 굴곡이 분명한 신체, 반듯한 자세로 무척 강한 인상을 풍기는 당당한 불상으로, 없어져 새로 보완한 왼손과 오른쪽 팔 어깨 아래 부위를 제외하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철불은 대체로 통일신라 말기에 등장하여 고려 초까지 유행한 양식으로, 비로자나불이 다수를 차지하며 주로 선종사찰에 남아 있습니다. 선종은 새로 발흥한 지방 호족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성장하였으므로 그 중심사찰도 지방에 주로 위치하였고, 따라서 현존하는 대부분의 철불들 역시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선원동 철불좌상은 다소 의외의 불상입니다. 이곳 영천은 수도 서라벌과 그다지 멀지 않은 경상도 지역이고, 불상의 수인 또한 비로자나불을 나타내는 지권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므로 철불의 주류에서 다소 벗어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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