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08일
금강산 내금강

올해 6월부터 그동안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볼 수 없었던 금강산 내금강의 관광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금강은 남북으로 뻗은 금강산 주능선의 서남쪽 지역으로, 흔히 금강산을 말할 때 외금강을 남성적인 멋에 견주고, 내금강을 여성적인 풍경에 비유합니다. 내금강은 여러 갈래 계곡의 물줄기가 빚어놓은 수많은 폭포와 못이 녹음, 기암절벽과 어울려 그윽하고 우아한 계곡미를 자랑합니다.
내금강에는 예로부터 장안사, 표훈사, 정양사, 마하연 등 금강산의 내노라하는 절집이 자리잡았으며, 지금도 금강산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외금강의 유점사, 신계사, 내금강의 표훈사와 더불어 금강산 4대 고찰로 꼽혔으나 지금은 모든 건물들은 사라지고 주춧돌 몇 개와 비석과 부도 몇몇만이 남아 있는 장안사(長安寺)터를 지나 삼불암교 건너면, 길 양쪽에 집채만한 삼각형의 바위 둘이 이마를 맞대듯 버티고 있는 바위가 있는데, 바로 삼불암(三佛岩)입니다.
삼불암의 앞뒤옆 세 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앞면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불과 아미타불이, 왼쪽면에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 입상이, 뒷면에는 보살상 60여 구가 나란히 조각되어 있습니다.

표훈사(表訓寺)는 금강산 4대 사찰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온전한 사찰입니다. 한때는 건물 20여 채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하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현재는 반야보전과 영산전이 복원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명부전, 칠성각 등이 있습니다.
표훈사에서 뒤쪽으로 800m쯤 산길을 오르면, 방광대(放光臺) 허리에 자리잡은 정양사(正陽寺)가 있습니다. 정양사란 이름은 산마루에 위치해 햇빛이 항상 밝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다고 하며,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정양사에는 금강산 3대 고탑인 정양사 삼층석탑과 특이한 구조의 6각 석등, 육각형 모양의 약사전이 천년 세월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표훈사에서 만천을 따라 동북쪽으로 100m쯤 오르면 큰 바위 둘이 서서 돌문을 이루고 있는데, 바로 내금강 금강문입니다. 이 금강문을 지나서 화룡담까지 약 1km 구간이 만폭동(萬瀑洞)으로, 금강산에서 계곡미가 뛰어나기로 유명합니다. 비록 그리 길지는 않으나 계곡이 온통 폭포와 못으로 가득 차 있어, 이름도 폭포가 만 개나 될 정도로 많다고 하여 '만폭'이라 부릅니다.

만폭동 분설담 맞은편의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법기봉 중턱에는 높이가 7.3m나 되는 구리기둥 하나에 의지하여 벼랑에 간신히 기대고 있는 보덕암이 있습니다. 고구려 영류왕 때 보덕화상이 자연굴을 이용하여 지었다고 전하는 보덕암은 그 후 고려와 조선 때 중창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던 것을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만폭동의 끝인 화룡담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짙게 우거진 숲길인데, 여기서부터 백운대 구역이 시작됩니다. 백운대 구역은 설옥동(雪玉洞), 백운동(白雲洞), 화개동(花開洞), 내무재골(內霧在嶺谷) 등 여러 계곡과 산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해발 1105m인 백운대(白雲臺)입니다.
전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갈림길에 위치하여 좋은 휴식터가 되고 있는 백운동 마하연터를 지나 만폭동 계곡의 상류인 사선교까지 약 2km 구간이 화개동(花開洞)입니다. 화개동은 탁 트인 넓은 골 안으로, 그다지 깊지 않은 맑은 못들이 누운 폭포가 잇따라 이어지고 주위에는 나무숲이 빽빽하며 조용합니다.
이 화개동에 묘길상(妙吉祥)이 있는데, 이 마애불은 높이 15m에 폭이 9.4m나 되는 거대한 아미타여래상으로 섬세한 조각선은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묘길상은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전인 고려시대에 나옹조사가 원불로 조각했다고 전해오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최대의 걸작입니다.
# by | 2007/06/08 22:39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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