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01일
석남사
석탑
- 석남사 대석탑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영남 9봉 중 가장 높은 산인 가지산(1,240m)의 동쪽 석남골 들머리에 석남사(石南寺)가 있습니다.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와 더불어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도의선사는 중국으로부터 선불교를 신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고승으로, 후에 보조선사 체징에 이르러 최초의 선문인 가지산문이 열리게 되는데, 전남 장흥의 보림사가 그것입니다.
후에 석남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빈터만 남게 되었다가, 현종7년(1666년)에 대웅전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였으며, 순조 3년(1803년), 1912년, 근래까지도 중수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 석남사 대석탑 상륜부
대웅전 앞에 있는 대석탑은 1973년에 세워진 것인데, 그 연원은 도의선사가 세웠다는 15층 석탑에 거슬러 올라갑니다.
석남사 대석탑은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안할 곳을 물색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오래 전에 있었던 15층 석탑이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탑의 일부 부재만 남아 있던 것을 사용하여 3층으로 축소하여 개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높이가 11m에 이릅니다.
- 석남사 부도
석남사 부도는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고,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로 구성된 기단을 쌓았으며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 상륜부를 차례로 놓았습니다.
지대석은 높직한 팔각의 돌 하나로 윗면에 하대석을 받치기 위한 얕은 각형의 굄을 한 단 새겨놓았습니다. 하대석은 별 개의 돌인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대석 아랫돌에는 사자상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하대석 윗돌에는 온통 구름이 엉킨 장식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중대석은 아래위쪽이 둥글게 줄어든 고복형이며, 귀기둥 대신 네모난 꽃 모양의 안상을 새기고 안상 안에 꽃잎 네 장인 연꽃을 야무지게 맨 모습의 문양이 있습니다. 이들 중대석 안상 안에 새겨진 꽃잎 네 장인 연꽃은 상대석에서 앙화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 석남사 부도의 신장상
몸돌은 팔각기둥 형태이며, 정면과 뒷면에 장방형의 문 모양이 조각돼 있고, 정면 좌우로는 신장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몸돌 각 면에 귀기둥을 조각하고 아래위로 같은 굵기의 선을 두르고 있어 문비와 신장상이 마치 액자에 들어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지붕돌 윗면은 낙수면이 완만하게 흐르며, 8각의 합각마다 우동마루가 표현되어 있고 기왓골까지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상륜부는 여덟 꽃잎이 솟은 앙화와 팔각기둥 모양의 보륜과 보개, 높직한 보주까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3.5m로 보물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영남 9봉 중 가장 높은 산인 가지산(1,240m)의 동쪽 석남골 들머리에 석남사(石南寺)가 있습니다.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와 더불어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도의선사는 중국으로부터 선불교를 신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고승으로, 후에 보조선사 체징에 이르러 최초의 선문인 가지산문이 열리게 되는데, 전남 장흥의 보림사가 그것입니다.
후에 석남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빈터만 남게 되었다가, 현종7년(1666년)에 대웅전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였으며, 순조 3년(1803년), 1912년, 근래까지도 중수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에 있는 대석탑은 1973년에 세워진 것인데, 그 연원은 도의선사가 세웠다는 15층 석탑에 거슬러 올라갑니다.
석남사 대석탑은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안할 곳을 물색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오래 전에 있었던 15층 석탑이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탑의 일부 부재만 남아 있던 것을 사용하여 3층으로 축소하여 개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높이가 11m에 이릅니다.

석남사 부도는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고,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로 구성된 기단을 쌓았으며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 상륜부를 차례로 놓았습니다.
지대석은 높직한 팔각의 돌 하나로 윗면에 하대석을 받치기 위한 얕은 각형의 굄을 한 단 새겨놓았습니다. 하대석은 별 개의 돌인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대석 아랫돌에는 사자상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하대석 윗돌에는 온통 구름이 엉킨 장식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중대석은 아래위쪽이 둥글게 줄어든 고복형이며, 귀기둥 대신 네모난 꽃 모양의 안상을 새기고 안상 안에 꽃잎 네 장인 연꽃을 야무지게 맨 모습의 문양이 있습니다. 이들 중대석 안상 안에 새겨진 꽃잎 네 장인 연꽃은 상대석에서 앙화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몸돌은 팔각기둥 형태이며, 정면과 뒷면에 장방형의 문 모양이 조각돼 있고, 정면 좌우로는 신장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몸돌 각 면에 귀기둥을 조각하고 아래위로 같은 굵기의 선을 두르고 있어 문비와 신장상이 마치 액자에 들어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지붕돌 윗면은 낙수면이 완만하게 흐르며, 8각의 합각마다 우동마루가 표현되어 있고 기왓골까지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상륜부는 여덟 꽃잎이 솟은 앙화와 팔각기둥 모양의 보륜과 보개, 높직한 보주까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3.5m로 보물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by | 2007/08/01 06:40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