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6일
도동서원(道東書院)

도동서원은 김굉필(金宏弼)을 모신 서원으로, 이황과 정구가 주도하여 지역 유림의 협조로 세워졌습니다. 1607년 선조 때 '공자의 도(道)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의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는 현판을 하사받고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김굉필은 조선조 사림파의 적자(適子)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고려 말의 정몽주에서 비롯되어 길재, 김숙자, 김종직에게 차례로 전해진 유학의 맥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연산군 때에 일어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향지 순천에서 50세의 나이로 사약을 받고 일생을 마감하였으나, 조광조, 김안국, 성세창 등 쟁쟁한 인물들을 제자로 배출할 정도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사후에는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사림의 추앙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현풍에서 도동서원을 찾아가는 길의 마지막 고개인 다람재 정상에 서면 도동리와 도동서원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동북향으로 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도동서원 일대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보는데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내 마음의 주인을 부르는 문'이란 뜻을 지닌 환주문(喚主門)은 중정당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문으로, 갓 쓴 선비들이 고개를 숙여 들어오도록 처음부터 문을 낮게 만들었습니다. 이에는 배움의 문으로 들어서는 선비는 스스로 마음가짐을 낮추고, 내 마음의 주인을 불러보게 하기 위한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환주문은 도동서원에서 가장 귀엽고 매력적인 건물로, 특이하게도 작은 크기의 절병통이 얹힌 사모지붕을 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선비는 고개를 낮추고 들어오지만 선비는 갓을 쓰고 들어오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말입니다.

환주문에서 눈여겨 볼만한 또 하나는 환주문의 문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박혀 있는 꽃봉오리를 새긴 돌입니다. 이 꽃봉오리 돌은 드나들던 유생들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가다듬도록 유도하기 위함인데, 이러한 재치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중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마치 흔들림 없는 도학자의 의젓하고 당당한 기품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도동서원의 강당에 해당하는 이 건물은 1605년 완공되었으며, 서원을 감싸는 담장과 더불어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정당의 중정(中正)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실천한다는 뜻으로 바로 중용(中庸)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동서원의 토담은 돌과 흙과 기와를 골고루 이용하여 튼튼하게 쌓아올리고, 암키와를 지붕으로 덮어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드문드문 수키와를 엇갈리게 끼워 넣어 무늬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렸습니다. 비록 이 토담은 사람의 손을 거쳐 지어졌지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넘쳐흐릅니다.

도동서원을 찾게 되면 입구에 서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정구(鄭逑)가 도동서원 사액을 기념하여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도동서원의 역사와 같은 40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은행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기운이 강하여 기상 높은 선비를 기르는 최고의 상징으로서 서원이나 향교 앞에 한두 그루 심었습니다. 또한, 은행나무는 해마다 많은 열매를 맺으므로 많은 선비를 배출하려는 소망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 by | 2007/10/16 07:39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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