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07일
코로의 '지하의 세계를 떠나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1861, Oil on canvas, 112.3 x 137.1 cm, Museum of Fine Arts, Houston, Texas
코로가 그린 '지하의 세계를 떠나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는 저승으로부터 유리디체를 구해 지상으로 데리고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르페우스(Orpheus)는 최고의 시인이면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의 신 아폴론, 어머니는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로 부모로부터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아버지로부터 악기인 리라를 선사 받아 어찌나 잘 탔는지 그의 음악에 매료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유리디체(Eurydice)라는 님프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한 양치기에게 쫓기다가 뱀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가서 직접 아내를 찾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리라를 타고 노래하면서 지하의 세계로 내려갔습니다.
그의 음악에 감동한 뱃사공 카론은 산 사람인 그가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었으며, 지하세계의 문지기 개인 케르베로스도 고개를 숙이고 저승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는 저승의 왕인 하데스와 아내 페르세포네 앞에 나아가 리라로 반주하면서 아내를 되찾기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의 애달픈 노래를 듣고 누구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그것에 거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오르페우스는 유리디체를 지상으로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붙었는데, 그것은 지상에 도착하기까지는 그가 그녀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앞서고 유리디체는 뒤따르면서 둘은 어둡고 험한 길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걸어왔습니다. 마침내 지상의 세계로 나가는 출구에 거의 도착하게 되었을 때, 오르페우스는 순간 약속을 잊고 유리디체가 잘 따라오나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에 유리디체는 지하의 세계로 다시 끌려갔습니다.
오르페우스는 다시 그녀를 따라 지하의 세계로 내려가려 했으나 이번에는 카론도 케르베로스도 그에게 다시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그 후 여자를 멀리하며 추억을 회상하며 살았습니다. 처녀들은 그에게 구혼하였으나 그는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의 제전에 참석한 그를 한 처녀가 발견했습니다. 처녀들은 자신들의 구혼이 거절당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창과 돌을 던져 그를 공격하여 그의 사지는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의 찢긴 몸은 강에 던져졌고 그것들은 슬픈 모래가 속삭이는 듯 노래와 연주를 하며 흘러 내려갔습니다. 그는 죽어 지하의 세계에 내려가서 유리디체를 찾아내자 열렬히 그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의 찢긴 몸은 강에 던져졌고 그것들은 슬픈 모래가 속삭이는 듯 노래와 연주를 하며 흘러 내려갔습니다. 그는 죽어 지하의 세계에 내려가서 유리디체를 찾아내자 열렬히 그녀를 끌어안았습니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18세기의 작곡가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에 의해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라는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왕 시작한 김에 코로의 작품을 좀 더 보겠습니다.
Recollection of Mortefontaine, 1864, Musée du Louvre
코로로 작품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모트르퐁텐의 추억'이란 그림입니다.
가지들이 비스듬히 휘어져 있는 나무 아래에 어머니와 아이들의 노는 평화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는 이 그림을 마음이 심란스러울 때 바라다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위안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이 그림 속에 담겨있는 역동성과 정적인 고요함의 조화가 이러한 느낌의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The Bridge at Narni, 1826, Oil on paper, Musée du Louvre
코로(1796-1875)는 파리 출생하여, 처음에는 상업에 종사하였으나 1822년부터 미샤롱과 베르탱에게 사사하여 그림을 공부하였습니다.
1825년부터 2년간 동경하던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자연과 고전작품을 스승으로 한 정확한 색채에 의한 섬세한 화풍을 발전시켜, 1827년 '나르니 다리'로 살롱에 등장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프랑스에 살면서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을 비롯한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뛰어난 풍경화를 남겼습니다.
Woman with a Pearl, Oil on canvas, 70 x 55 cm, Musée du Louvre
이왕 시작한 김에 코로의 작품을 좀 더 보겠습니다.

코로로 작품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모트르퐁텐의 추억'이란 그림입니다.
가지들이 비스듬히 휘어져 있는 나무 아래에 어머니와 아이들의 노는 평화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는 이 그림을 마음이 심란스러울 때 바라다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위안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이 그림 속에 담겨있는 역동성과 정적인 고요함의 조화가 이러한 느낌의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1796-1875)는 파리 출생하여, 처음에는 상업에 종사하였으나 1822년부터 미샤롱과 베르탱에게 사사하여 그림을 공부하였습니다.
1825년부터 2년간 동경하던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자연과 고전작품을 스승으로 한 정확한 색채에 의한 섬세한 화풍을 발전시켜, 1827년 '나르니 다리'로 살롱에 등장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프랑스에 살면서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을 비롯한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뛰어난 풍경화를 남겼습니다.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샤르트르 대성당', '모트르퐁텐의 추억' 등이 유명하며, 풍경화 이외에도 '진주의 여인', '푸른 옷의 여인', '샤르모아 부인상' 등이 있습니다.
코로의 작품은 은회색의 부드러운 색조를 사용하여 우아한 정경을 드높여 주어, 단순한 풍경에도 시와 음악을 부여하였다는 점이 큰 특색입니다. 동시에 착실한 관찰자로서 자연을 감싸주는 대기와 광선의 효과에도 민감하여, 빛의 처리 면에서 훗날 인상파 화가의 선구자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 by | 2007/12/07 13:22 | 미술산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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