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숭례문에 대한 국보 해제가 옳다. etc.

- 이번 숭례문 화재에서 간신히 건진 숭례문 현판. 사진출처: 조선일보

보(國寶)는 우리나라의 건축물이나 유물 등의 유형 문화재 가운데에 중요한 가치를 가져 보물로 지정될만한 것들 중에서 인류문화적으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 독특하고 희귀한 것 등으로 인정되어 따로 지정된 문화유산을 말하며, 현재까지 310점 남짓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보에는 제1호, 제2호…, 이런 식으로 고유번호가 붙어 있는데, 이는 지정순서에 따라 붙여진 것이지 유물의 중요도에 따라 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국보 제1호가 국보 제310호보다 더 중요한 문화재란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보 제1호가 갖는 상징성까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파손되었다는 점에서 가슴이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국보 제1호가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이러한 불행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일과 이번 방화로 불탄 숭례문을 원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다시 짓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이번 화재로 불탄 숭례문에 대한 국보 지정 여부에 대한 신중한 검토 또한 필요한 일입니다.

문화재청은 일단 문화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며, 불에 타지 않은 부재(部材: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가지 재료)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국보 해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문화재청은 앞으로 2~3년간 2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들여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겉모습을 되살린다고 하여 문화재적 가치도 같이 되살아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제 어떤 방법으로도 이전의 숭례문으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듯이 이번 화재로 죽음을 맞이한 숭례문 또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고 없습니다. 설혹 복원이 되어 이전과 비슷한 모습을 갖는다 하더라도 이전의 숭례문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많은 문화재 전문가들 또한 누각이 대부분 불타버렸기 때문에 조선시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는 이미 잃어버렸다는 의견입니다.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새로 지은 건물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매우 낮다.”고 말하였으며, 서정호 교수(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역시 “석축이 남아있긴 하지만 숭례문의 핵심은 누각”이라며 “복원에 사용할 수 있는 부재가 거의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전의 예를 보면, 6ㆍ25 전쟁 때 누각이 모두 타버린 광화문은 1968년 석축 위에 콘크리트로 복원됐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으며, 2005년 산불로 불탄 낙산사 동종 역시 이듬해 10월 복원됐지만 보물에서 해제됐습니다.

만일 문화재청이 불탄 숭례문을 국보 제1호로 계속 고집한다면, 이는 국보 제1호를 소실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는 계산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원형을 거의 소실하여 국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숭례문을 국보 제1호의 자리에서 억지로 놓아두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뿐더러, 또 하나의 책임회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참고로 전통한옥의 전문가인 신영훈 선생께서 이번에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 조선일보에 실렸는데, 그 내용을 옮겨봅니다.

아호가 '목수(木壽)'인 신영훈 선생은 평생을 한국 전통 건축을 짓고 알리는 데 몸바친 건축사가(建築史家)이자 대목수입니다. 특히 지난 1961~63년 숭례문 중수(重修) 당시에도 공사감독관으로 참여, 당대의 대목수들과 함께 숭례문을 해체했다 다시 짓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그 기사 내용의 일부입니다.

―당국에선 곧 숭례문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복원(復元·復原)'이란 당치도 않은 말이다. 원래 우리말도 아니고 일본말일 뿐더러, 어떻게 우리가 조선 초에 만들었던 그 건물을 원형대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새로 숭례문을 짓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중건(重建)'이라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다시 짓는다고 해도 그것은 21세기의 건물이다. 국보 1호 지정도 해제해야 한다. 일부 부서진 걸 수리했던 1960년대의 '중수'와는 상황이 다르다."

―2006년 만들어 놓은 숭례문의 정밀 실측도를 바탕으로 한다는데….

"재현이란 대충 형태만 같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선 옛날에 쓰던 도구가 완전히 다르다. 나무를 깎는 데 쓰던 목척(木尺)의 길이는 시대마다 차이가 난다. 돌 쌓는 데 쓰는 자와 나무 다듬는 데 쓰는 자도 다를 수 있다. 1960년대 중수 때도 그걸 깨닫고 옛날 척도를 일일이 다시 계산했다. 구조물의 비밀스런 곳에는 반드시 옛 치수를 알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광규 씨 같은 사람은 그때까지도 조선시대의 자를 가지고 있었다." 

- 만약 지금의 척(尺) 길이나 미터법을 써서 새로 짓는다면?

"그렇게 짓고 나면 나무가 뒤틀리고 변형된 뒤에는 완전히 다른 집이 돼 버린다. 게다가 기계톱 같은 요즘 연장을 가지고 깎는다면 나무의 질감과 맛이 전혀 달라진다. 옛 숭례문의 정신과 분위기를 잃어버린 건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부분까지 세밀하게 신경을 써서 다시 지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옛날에 숭례문을 지을 때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목재를 보내는 방식도 달랐다. 일부러 소나무를 묶어서 뗏목을 만들어 한강에 띄웠다. 그러면 물에 젖는 과정에서 소나무의 송진이 물을 막기 위해 분출돼 아주 단단해진다. 지금 그렇게 하기가 쉽겠는가? 덕수궁 같은 데 가서 처마를 보면 나무가 갈라져 있는 게 다 그런 방법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못 하나를 새로 만들더라도 모양은 비슷하게 할 수 있지만 똑같은 쇠를 가지고 만들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건물 형태 속에 담긴 옛 어른들의 정신까지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최대한 거기에 가깝게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노력을 해야 할까?

"숭례문은 조선시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 법식(法式)을 제대로 파악해 옛 사람들의 식견을 존중해야 한다. 석축부터 차근차근 점검하고, 불에 타 버린 나무들 중에서도 옛날 나무와 1960년대에 갈아 넣은 나무를 하나하나 분류한 뒤 쓸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나무를 다듬는 일도 반드시 현장에서 옛 재료들을 봐 가면서 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진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덧글

  • nabiko 2008/02/18 14:31 # 답글

    일부러 소나무를 묶어서 뗏목을 만들어 한강에 띄웠다-정말 심오하네요..근데 위에서 빨리빨리 하라고 하면 정말 완성도 측면에서 많이 불안한데..휴..
  • 하늘사랑 2008/02/18 15:22 # 답글

    nabiko님/ 그러게 말입니다. 제발 이번만이라도 전시행정과 조급증과 같은 고질병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 解明 2008/02/18 18:30 # 답글

    숭례문을 새로 짓는 데 쓰일 소나무를 찾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EST_ 2008/02/19 01:45 # 답글

    '국보'라는 호칭 자체에 대한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은데, 전 글을 읽으면서 만약 국보라는 호칭을 지속한다면 이번 일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후일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1호를 비워놓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결코 쉽지 않을 복원작업이 마무리된 후 되살아난 숭례문이 다시금 오랜 가치를 인정받을 먼 훗날 1호 자리를 복권시킨다든지...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 과일장수 2008/02/19 03:18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전문가의견으로라면...원래부터 숭례문이 국보1호였어야 하는지부터가 오류라는 겁니다. 2호부터 100호까지 국보의 가치를 따지자면 숭례문은 60호정도 될까요? 세계적 가치까지 있는 훈민정음이 70호정도니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는 것이 가치를 따졌어야했던거라면 일찍히 숭례문이 국보1호가 아닌 국보60~70호나 보물1호가 되었어야는겁니다.

    전문가의견에 따른다면....90% 붕괴되고 시멘트로 버티고있는 전북의 국보12호 미륵사지 석탑, 한채빼곤 거의 전소,파괴되었던 불국사나 다보탑,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의 가치가 전혀 없는데, 숭례문만이 국보에서 제외된다는것도 조금 의미가 없습니다.

    국보와 보물로 나뉘어진 것과 번호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이라는 것에 우리의 마음까지 엃매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도 EST_님의 의견과 비슷합니다.
    숭례문을 1호로 남기고, 숭례문 중축 건물로 따로 지정하는 것이 좋다라고 보구요.
    그게 아니면, 1호자리를 남긴다든가... 국보,보물 순번을 중요도에 따라 재정비하든가...
    하지만, 무작정 국보 1호의 자리를 없앤다...라는 건 정서상 웬지 캥기는게 좀...
  • 하늘사랑 2008/02/19 08:19 # 답글

    과일장수님/ 이번에 불탄 숭례문이 국보에서 해제해야한다는 의견을 말하면서도 이는 무척 가슴 아픈 일입니다. 숭례문이 국보로 지정된데는 여러가지 면이 반영되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선초기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목조 2층 누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2층 누각의 대부분이 파손되어 숭례문이 갖고 있던 문화재적인 가치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덧붙여, 과일장수님이 몇가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어 몇 자 부언해봅니다.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90%가 붕괴되었다는 표현은 좀 과장된 것 같습니다. 현재 한쪽이 떨어져나간 6층으로 남아있는데, 원래는 9층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석탑은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석탑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탑이며, 현재 얼마 남아있지 않는 백제시대의 귀한 탑입니다. 국보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습니다.

    불국사의 경우, 현대에 들어 복원한 부분은 국보 지정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우선 목조 누각이 복원된 청운교, 백운교는 석축계단 자체의 가치로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다보탑 역시 큰 손상없이 건축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목조건물로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오래된 건물입니다. 국보로 지정된데는 건립연대가 분명하여 우리 나라 고건축의 기준이 되며 그 역사성과 아름다움에 의한 것입니다.
  • Hikaru 2008/02/22 09:54 # 답글

    '..만일 문화재청이 불탄 숭례문을 국보 제1호로 계속 고집한다면, 이는 국보 제1호를 소실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는 계산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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