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28일
고향의 오솔길...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풍경화입니다.
'Woldgate Lane to Burton Agnes'란 그림 제목 그대로 자신의 고향인 영국 요크셔의 풍경을 그린 사실적인 풍경화이죠. 하지만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냥 단순히 사실적이라고 하기엔 뭔가 다른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화폭 아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풍경은 풀과 꽃들이 만발한 초여름의 풍경으로 짐작되는 반면, 화폭 윗부분 일부에 그려져 있는 나무들은 이제 겨우 새싹을 틔우고 있는 나목들로 초봄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처럼 한 화폭 속에 이른 여름과 이른 봄의 두 계절의 풍경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 풍경화에서 받는 왠지 낯설고 환상적인 느낌은 이러한 초현실적인 설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그가 사진작품에서 즐겨 사용하였던 포토 콜라주의 연장 선상인지는 알 수 없으며, 또한 이러한 시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작가 자신이 아니고선 알 수가 없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시도로 인해 단순하게 보일 수 있는 한 폭의 풍경화는 색다른 느낌으로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다가옴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그는 특유의 풍부한 실험정신으로 회화, 데생, 판화, 사진, 영화, 무대장식, 일러스트레이션 등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절제된 기법의 사용, 빛에 대한 관심, 팝아트와 사진술에서 끌어낸 솔직하고 평범한 사실주의가 작품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1937년 영국의 웨스트 요크셔 지방의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미술학교를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낡은 자전거를 예쁘게 페인트칠을 하거나 화려한 색으로 집안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을 보면서 색깔이 사물을 변화시키는 힘을 느꼈던 그는 어려서부터 드로잉에 상당한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그러한 재능은 런던에 있는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공부를 하면서 더욱더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고, 또한 그곳에서 팝아트의 중심이 된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961년 그가 막 런던의 왕립예술학교를 마치고 처음 미국을 방문하면서 그의 작품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특히 서부를 상징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영국과는 매우 다른 자유로움와 모험정신을 느꼈습니다. 로스 앤젤리스에서의 그는 캘리포니아 사람들보다 더 캘리포니아스럽게 변모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린 그림의 주제는 잔디 스프링클러, 수영장, 야자나무 등 로스 앤젤리스를 생각하면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풍경들의 한 부분들입니다. 또한 이러한 주제는 햇빛이 빛나는 쾌락주의, 성적인 자유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

70세를 넘긴 호크니는 귀향을 하였습니다. 이제 그가 주로 살고 있는 곳,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곳은 바로 고향인 요크셔입니다. 요크셔는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농촌입니다. 젊은 시절 캘리포니아에서 호크니는 밝은 줄무늬 셔츠를 입고 짝이 맞지 않는 파스텔 색조의 양말을 신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호크니는 어두운 트위드에 격자무늬 슬리퍼를 신고 있습니다. 금발 머리는 회색이 되었고, 커다란 둥근 안경은 타원모양의 안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양말도 이제 짝이 맞습니다. 호크니는 이제 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가진 평범한 남자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듯 그는 일상적인 가족을 유지할 그런 타입은 아닙니다. 그의 스튜디오로 연결되는 계단에는 누군가 밝은 빨간 카펫을 깔아놓았으며, 10년이 넘게 같이 지내온 동반자 존 피츠허버트와 스튜디오 어시스턴트인 장 피에르 곤칼베스 드 리마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호크니는 여전히 런던과 로스 앤젤리스에도 집을 가지고 있어 자유롭게 옮겨다닙니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 1968 ⓒ David Hockney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Rooms By The Sea, 1951, Edward Hopper
호크니의 가장 흥미로운 작품들 중 대표적인 것들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잘 알고 지내던 작가이고, 돈 바카르디는 그의 연인입니다.)와 같이 두 사람을 동시에 그린 인물화입니다.
호크니가 인물화에 있어 두 사람을 즐겨 그리는 것은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분리로 작용하기도 하는 두 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이 공간의 의미를 그는 "특별히 두 인물 간의 공간, 많은 사람들이 제거해버리기 원하는 그런 공간말이다. 모든 창조물은 통합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1968년 작품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를 보고 있으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얼핏 떠오릅니다. 분명히 그의 인물화는 에드워드 호퍼 그림의 영향을 일부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우울한 그림들에 비해 좀 더 밝고 즐거움이 넘칩니다. 호크니는 거의 작품 제작 주문을 받은 적이 없어, 그가 그린 인물화의 대상은 친구들, 연인들 그리고 가족들입니다. 따라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그'와 같은 인물화에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는 달리 개인적인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 본문의 일부는 Art Price 지의 'Twilight of the Bad Boy'에서 참고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듯 그는 일상적인 가족을 유지할 그런 타입은 아닙니다. 그의 스튜디오로 연결되는 계단에는 누군가 밝은 빨간 카펫을 깔아놓았으며, 10년이 넘게 같이 지내온 동반자 존 피츠허버트와 스튜디오 어시스턴트인 장 피에르 곤칼베스 드 리마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호크니는 여전히 런던과 로스 앤젤리스에도 집을 가지고 있어 자유롭게 옮겨다닙니다.


호크니의 가장 흥미로운 작품들 중 대표적인 것들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잘 알고 지내던 작가이고, 돈 바카르디는 그의 연인입니다.)와 같이 두 사람을 동시에 그린 인물화입니다.
호크니가 인물화에 있어 두 사람을 즐겨 그리는 것은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분리로 작용하기도 하는 두 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이 공간의 의미를 그는 "특별히 두 인물 간의 공간, 많은 사람들이 제거해버리기 원하는 그런 공간말이다. 모든 창조물은 통합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1968년 작품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를 보고 있으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얼핏 떠오릅니다. 분명히 그의 인물화는 에드워드 호퍼 그림의 영향을 일부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우울한 그림들에 비해 좀 더 밝고 즐거움이 넘칩니다. 호크니는 거의 작품 제작 주문을 받은 적이 없어, 그가 그린 인물화의 대상은 친구들, 연인들 그리고 가족들입니다. 따라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카르디그'와 같은 인물화에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는 달리 개인적인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 본문의 일부는 Art Price 지의 'Twilight of the Bad Boy'에서 참고하였습니다.
# by | 2008/04/28 11:30 | 미술산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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