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2일
고구려 와당

와당은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屋蓋用)의 건축부재를 말하며,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모골(模骨) 및 와범(瓦範) 등의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합니다. 원래 목조건물의 지붕에는 이엉이나 볏짚, 그리고 나무껍질 같은 식물성 부재를 사용하였는데 내구력이 약하여 자주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방수효과나 강도가 높은 반영구적인 점토소성품(粘土燒成品)인 기와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목조건물에 기와를 사용하여 지붕을 이는 풍습은 고대 동양건축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이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의 문헌인 고사고(古史考)에 “하나라 때 곤오씨가 기와를 만들었다(夏時昆吾氏作瓦)”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의 예를 보면 주말(周末) 연(燕)의 하도(下都)인 역현(易縣), 또는 제(齊)의 국도인 임치(臨淄) 등에서 기와의 출토품이 있습니다.
한대(漢代)가 되면 궁원, 관아, 능묘, 사당은 물론 일반 가옥에까지 원형의 수막새 기와가 널리 사용되며, 남북조(南北朝)시대가 되면 문자와 함께 주연(周緣)에는 문양이 없고 높으며, 연판은 중앙의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만개한 형태의 연판문(蓮瓣文)이 등장하며 녹유(綠釉)를 입힌 와당이 출현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당대(唐代)가 되어도 계속되며, 당대 이후에는 수막새 주연에 연주문(聯珠文)이 첨가되고 암막새에도 문양을 조각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와당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적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조건에 맞게 구조가 변형되어, 이른바 한국적인 양식으로 발전을 보게 된 것은 3세기 말 이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삼국시대 건물자리에서 비로소 와당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는 각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 조영을 담당하는 관서(官署)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만을 전담하는 와박사(瓦博士)의 직제(職制)가 있었고, 백제 위덕왕 35년(588)에는 일본에 와박사를 파견할 정도로 발전되었습니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瓦器典)이란 마을이 있었으며, 중국 문헌인 『신당서(新唐書)』의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라 하여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佛寺)에 기와를 사용하였다” 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와는 지붕에 씌워 눈과 빗물의 침수를 차단하고 이를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하여 사용됩니다. 기와 지붕은 기본적으로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그리고 처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붕은 먼저 수키와(圓瓦, 夫瓦)와 암키와(平瓦, 女瓦)로 이어 덮게 되는데, 이렇게 이어진 기와는 처마 끝에 와서 각기 끝막음을 하게 됩니다. 막새(瓦當)는 지붕의 추녀 끝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기와로 수키와 끝에 원형의 드림새를 부착한 수막새(圓瓦當)와 암키와 끝에 장방형의 드림새를 부착한 암막새(平瓦當)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암·수막새는 여러 가지 무늬가 음각된 목제 또는 도제(陶製)의 와범에서 찍어 낸 것으로, 연꽃, 당초(唐草), 보상화(寶相華), 귀면(鬼面), 금수(禽獸) 등의 다양한 무늬가 드림새에 새겨져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채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기와 문양은 그 구성 형식으로 볼 때 전체적으로 한계(漢系)인 낙랑시대 와당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수막새 기와의 주문양(主文樣)은 연화문 형식으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며, 그 외에 인동문, 초문(草文), 차륜상문(車輪狀文), 도깨비(鬼面) 문양 등이 부조·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와당 문양은 고구려 미술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와당은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간결하며 강건하고, 도식적이며 도안화된 기하학적인 화문 형식이 백제나 신라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반면에 백제 와당은 고구려에 비해 단순하고 온화하며, 색깔도 회백색을 띠고 있으며, 연화문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 와당은 초기에는 백제와 유사한 모양과 무늬를 가진 것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호화롭고 세련미를 보이며 다양한 무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 by | 2008/06/22 19:54 | 문화유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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