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 문화·유적

-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립경주박물관의 정문을 들어서면 먼저 박물관 정원에 있는 종각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안에 걸려 있는 것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으로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합니다. 이 종은 통일신라 시대 동종(銅鐘)으로 높이가 3.33m, 입지름이 2.27m, 두께가 2.4cm, 무게는 18.9톤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대의 종이며 상원사 동종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범종입니다.

신라 33대 임금인 성덕왕은 태자로 삼았던 큰 아들이 죽자 둘째 아들 승경을 태자로 삼아 대를 잇도록 하였는데 바로 34대 효성왕입니다. 효성왕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봉덕사(奉德寺)'를 지었습니다. 뒤에 효성왕이 아들이 없어 동생 헌영을 태자로 삼아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는데 바로 신라 35대 경덕왕입니다. 경덕왕(景德王)은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뒤를 이어 혜공왕 7년(771)에 구리 12만 근(20t)을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 종은 원래 봉덕사에 있었던 것을 세조 6년(1460) 영묘사(靈妙寺)로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8월에 종각과 함께 경주박물관으로 옮겼습니다.
- 비천상
(飛天像)

종의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무늬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무늬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꽃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습니다. 종 위에는 웅건한 모습의 용이 음관(音管)을 감고 있습니다. 1997년 4월에는 두 개의 소리가 서로 간섭해 강약을 반복하는 맥놀이 현상 때문에 신비한 종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종정(鐘頂)의 용동(甬筒), 즉 음관에도 몇 개의 단(段)이 있어 각 단마다 앙련과 복련으로 된 연판(蓮瓣)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용뉴의 용두(龍頭)와 몸체는 박진감 있고 사실적 조각수법으로 생동감을 줍니다.

견대(肩帶) 밑에는 네 곳의 연주문 안에 보상당초무늬의 유곽(乳廓)을 둘렀고, 그 안에 양각 연화로 표현된 9개의 유두(乳頭)가 들어 있습니다. 이 유곽 밑의 종신에 비천상(飛天像)을 배치하였고, 그 사이에 번갈아 8판(瓣)의 연화당좌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종신에는 장문의 명문이 양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신라 동종에 흔하지 않은 특징입니다. 종신에 마주하고 있는 4구의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으로서, 비천상 주위에는 보상화(寶相花)가 구름과 같이 피어오르며, 천상으로 천의(天衣)와 영락 등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비천상 사이의 2곳에 이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을 적은 명문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종에 적은 이 명문은 630자로 된 서문과 200자로 된 명(銘)으로 짜여 있습니다. 주제는 성덕왕의 공덕을 종에 담아서 기리고, 종소리를 통해서 그 공덕이 널리 퍼져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지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된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 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도 때와 사람에 따라 적절히 비유하여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

-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성덕대왕신종은 에밀레종이라고 불러야 오히려 더 잘 알 정도로 우리들에게 에밀레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종이 에밀레종으로 불리게 된 사연에는 참으로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경덕왕이 자신의 아버지인 성덕왕을 위해 신종을 만드는 데 온 정성을 바쳤으나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 혜공왕이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즉위하자, 어린 혜공왕은 어머니 만월부인의 뜻에 따라 하루속히 종을 완성하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어느 날 봉덕사의 한 스님이 종을 만들기 위해 시주를 구하러 다니다가 가난한 농가에 들러 그 집 부인에게 봉덕사의 종을 위해 시주를 좀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희 집엔 아무것도 시주할 게 없으니 이 아기라도 좋다면 가져가시지요."라는 농부 부인의 말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날 밤, 스님은 절로 돌아와 법당에서 불경을 외다가 비몽사몽 간에,
"어찌 시주를 받지 않았는고? 어린 아기의 시주가 제일 정결한 것이니, 그 아기가 들어가면 종은 좋은 소리를 낼 것이니라."라고 하는 부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스님은 날이 밝아오자마자 그 가난한 농가로 달려가 아기를 시주로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의 부인은 "안됩니다. 어제는 제가 시주로 드릴 게 없어 그저 민망한 마음에 드린 말씀일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부처님께 한번 한 약속은 물릴 수가 없으니 약속대로 아기를 내주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큰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부인을 어르고 달래어 드디어 아기를 품에 안고 절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시뻘겋게 끓고 있는 쇳물 가마솥에 아기를 집어넣었습니다. 이윽고 771년에 종이 완성되어 임금을 비롯한 신하들이 봉덕사에 모여 타종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밀레~ 에밀레~~"

완성된 종의 부드럽고 맑으면서 애처로운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온 나라가 기원하고 바라던 훌륭한 신종이 완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엄마 품을 떠나 쇳물 속에 녹아든 어린 딸아이의 슬픈 울음이 종소리에 섞여 울려 퍼지는 것이라고 하여 '에밀레종'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에밀레종에서 아기 소리가 들린다는 이 슬픈 이야기는 당시 왕의 덕을 찬양하기 위해 벌린 불사로 백성들의 삶은 더욱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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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티티 2008/06/25 21:25 # 답글

    에밀레종!
  • 염소 2014/04/07 23:04 # 삭제 답글

    이야기좀 가져갈게요
  • 염소 2014/04/07 23:21 # 삭제 답글

    사진도 가져갈게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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