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림사에는 소나무 숲이 없다. 문화·유적

- 송림사 오층전탑

림사(松林寺)….

이름만 들어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을 것만 같은 절입니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송림사는 깊은 산 속이 아니라 오히려 차들이 씽씽 내달리는 찻길 바로 이웃에 있습니다. 찻길과 절을 구별하는 경계는 높직한 돌담 하나가 전부입니다. 한때는 이 주위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었을 것 같으나, 지금 송림사에는 제대로 된 소나무 숲 하나 없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숱한 전란과 함께 사세가 기울어진 탓도 있거니와 바로 코앞에 찻길마저 나버린 지금, 예전에 있었을 법한 그 많던 소나무는 사라지고 만 것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냥 절 이름만으로 짐작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실망스러운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기대했던 소나무 숲이 없다고 하여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비록 속수무책으로 저잣거리에 내다 앉은 격인 송림사이지만 대웅전 앞마당에 늠름하게 서 있는 벽돌로 만든 오층탑이 있기에 소나무 숲이 없어 느낀 실망감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송림사 오층전탑은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지난날의 연륜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석탑이 주종을 이루는 우리나라에선 벽돌로 만든 탑인 전탑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돌이 귀했던 중국에서는 벽돌로 쌓은 전탑들이 많지만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석탑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중국 전탑의 전통을 받아들여 만든 전탑이 드물지만 몇몇이 있는데, 이런 전탑들은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과 동부동 오층전탑, 조탑동 오층전탑 등과 같이 안동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습니다.

보물 제189호로 지정된 송림사 오층전탑은 순수하게 구운 벽돌로 쌓아올렸습니다. 탑의 상륜부까지 오롯이 갖춘 이 탑은 미술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희소가치 또한 높습니다. 또한 1959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상감청자 원형합과 은환, 향목, 목실, 옥류, 금동제 원륜, 금은제 수형 장식구, 녹색 유리제 사리병, 목불상 등과 함께 발견됐는데 모두가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중 제일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전탑 안에서 나온 '금동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로서, 이들 유물은 국립 대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송림사 대웅전


송림사는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 5년) 각덕조사(명관)가 진나라 유학 후 귀국하면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4과를 봉안하려고 창건한 사찰이라고 합니다. 그 후 몽고군에 의해 폐허가 된 것을 조선시대에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왜병들의 방화로 가람이 소실됐습니다. 1686년(숙종 12년) 기성대사에 의해 대웅전과 명부전이 중창돼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송림사에서 오층전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대웅전이 자칫 소홀히 대접받고 있지만, 이 건물 또한 요모조모 살펴볼 점이 많습니다.

대웅전은
1686년(숙종 12년)에 세워진 건물로, 대웅전에 붙어 있는 편액 또한 숙종이 쓴 글씨입니다. 우리의 옛 목조건물들을 보면, 기둥 위에만 공포를 두는 주심포양식은 맞배지붕의 건축물에 보통 채택되고, 다포계 공포양식은 대체로 팔작지붕의 건축물에 채택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송림사 대웅전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다포계 양식을 취하고 있어 상당히 이채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송림사 대웅전 단청


대웅전 뒷면의 단청을 보면, 최근에 새로 한 단청과 이전에 하였던 단청이 서로 뒤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새로 한 단청의 낯선 느낌은 아무래도 이전 단청의 은은한 멋을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 송림사 대웅전 후면. 쪽문 기둥 하단부에 가로로 댄 베겟목을 '신방목'이라 하는데, 이 신방목에 새겨진 연꽃무늬가 이채롭습니다.

대웅전 뒤쪽 벽에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쪽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불단을 건물의 뒷벽에 붙여서 조성하는 데 반해 송림사 대웅전 안을 보면 불단이 건물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불단을 건물의 가운데에 두면 불단의 후불벽과 뒤쪽 벽 사이에 회랑과 같은 공간이 생겨 불단에 모신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360도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이 회랑과 같은 공간과 외부로 통하는 통로로 이 쪽문을 만든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불단이 건물의 가운데에 있으면 불단 앞의 공간을 절반밖에 사용할 수 없어 그만큼 불단 앞 공간이 좁아지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 불단을 건물 뒤쪽 벽에 붙여서 만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송림사 대웅전처럼 불단이 건물의 가운데에 있는 건물은 좀 더 오래된 건물로 볼 수 있습니다.
- 송림사 대웅전 꽃 문살


송림사는 소나무 숲에서 절이 솟아났다는 재미있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마을 부잣집에 초상이 났습니다. 장사 지내기 전날 밤 상주의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내 시키는 대로 한다면 너의 집안은 복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화가 미칠 것이다. 장례를 끝마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물건이나 음식을 주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조상님이 현몽해 일러주신 것으로 믿은 상주는 아침부터 조상객이나 인부들에게도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인부들은 모두 배가 고팠지만 참고 일했으며 마을사람들도 추위 속에서 장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지나가는 걸인이 음식을 구걸했지만 상주는 떡 한 쪽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음식을 챙겨 집으로 돌려보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인부를 시켜 집으로 돌려보낸 음식이 걱정돼 자신이 직접 뒤쫓아가기로 하고 남아 있는 인부들에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절대로 장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게. 품삯은 두 곱으로 쳐주겠네."
"염려 마십시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불살라버릴 테니까요."

인부들에게 다짐을 받은 상주는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산에서는 인부들이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일을 했고 마치자마자 지푸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한곳에 쌓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거지 아이가 모닥불 옆으로 다가와 떨며 애원했습니다.

"저는 오늘 밤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제발 그 가마니 한 장만 주십시오."

측은한 마음이 든 인부들은 상의 끝에 헌 가마니 한 장을 줘 보내고 연장을 챙겨 막 내려오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거지 아이가 가고 있던 그 자리에는 웅장한 절이 생기고, 가마니는 그 절의 대웅전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후 상주 집안은 점점 몰락하고 대도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거지 아이에게 온정을 베풀었던 인부들은 점점 살림도 늘고 자손도 번창했습니다. 그래서 절의 이름을 소나무 숲에서 생긴 절이라 하여 '송림사'라고 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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