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 몰운대 etc.

- 몰운대 자갈마당

산의 3대(臺)라 하면 태종대, 해운대, 몰운대를 말합니다. 이 3대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가운데 뛰어난 바다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지 사람들은, 심지어 많은 부산사람조차 해운대와 태종대는 잘 알고 있으면서 몰운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몰운대(沒雲臺)란 이름은 '구름 속에 빠진 돈대((墩臺)'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그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몰운대의 원래 이름은 몰운도(沒雲島)로, 예전에 이곳은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데, 이는 강 상류에서 운반된 토사의 퇴적으로 육지인 다대포와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몰운대가 섬이었다는 사실은 1763년 일본통신사
조엄(趙儼)이 해사일기(海槎日記)에서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하고 나서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한 것 같다"고 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 몰운대 숲길


몰운대은 지금도 개발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군사작전구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지금처럼 민간인의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지금도 몰운대는 군사용 차량 외에는 일체의 차량진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오토바이나 자전거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몰운대에는 휴지통과  매점 또한 하나 없습니다.
- 몰운대 숲길


몰운대는 태종대처럼 아스팔트 길이 닦여 있고, 곳곳에 매점이 있으며, 관광버스가 수시로 지나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을 둘러 보려면 자신이 직접 걸어야 하며, 한 바퀴 도는 데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삼림욕장처럼 울창한 숲 속을 걷는 기분은 몰운대가 아니면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쥐섬(오른쪽)과 형제섬(왼쪽)


몰운대는 종종 태종대와 비교되는데, 태종대는 웅장하고 거칠어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면, 몰운대는 부드럽고 아기자기하여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갈마당과 어우러진 해안선의 곡선은 부드럽고, 바다에 접해 있는 절벽 또한 사람이 쉽게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하며, 낙동강과 만나는 남해 바다 또한 잔잔한 편입니다.

몰운대의 산책길을 걷다 보면 바다를 향한 곳에 벤치가 있는 것이 눈에 많이 띄는 데, 이 숲 속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맛은 더없이 상쾌합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해와 동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멀리 일본의 대마도가 보이기도 합니다.
- 정면에 보이는 섬은 모자섬이라 부릅니다.


낙동강 하구가 바다와 어우러지고 태백산맥의 마지막 끝자리가 되는 몰운대는 경관이 아주 뛰어나 예로부터 시인 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움을 노래한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의 시가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浩蕩風濤千萬里
白雲天半沒孤臺
扶桑曉日車輪赤
常見仙人賀鶴來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만리로 이어졌는데,
하늘가 몰운대는 흰 구름에 묻혔네.
새벽 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늘 학이 찾아와 인사하는 신선을 본다.
- 다대포 해수욕장


다대포 해수욕장은 몰운대와 바로 이웃해 있는 해안 백사장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백사장과 얕은 수심으로 인근의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해수욕장의 주변에는 숙박, 식당 등 부대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습니다. 특히 바닷가에서는 고등어 낚시를 할 수 있고, 썰물 때 모래벌판에서 소라를 줍는 재미와 함께 발을 삐죽이 내밀고 있거나 발발거리며 기어가는 게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 몰운대 내의 다대포 객사

객사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건물의 하나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보관하고,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이며, 또한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다대포 몰운대 내에 있는 다대포 객사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25년(순조 25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원래 다대초등학교 내에 있었으나 1970년에 현재의 자리에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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