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고택의 정자, 만화정(萬和亭) 문화·유적

- 만화정(萬和亭)


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만화정(萬和亭)은 주변 산수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리게 섬세하게 설계된 건물입니다. 이 만화정은 본래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1479~1560)이 건립한 서당의 유허지였으며, 소요당의 11세손 되는 박정주(1789~1850)가 분가해 지은 살림집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과 운강의 증손자 되는 박순병이 건물을 더 확장하여 정자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정은 운강이 현판을 걸고 근대화 교육의 강학소(講學所)로 쓰였으며, 운강의 아들 진계(進溪) 박재형(朴在馨:1838~1900)이 해동속소학 등 38권의 저서를 남긴 학문의 요람이기도 하였습니다

- 만화정(萬和亭). 사진 출처: 청도군청

소요당은 사마시에 합격한 후 중종 당시 사산감역, 사재감봉사, 장예원사평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일생을 초야에 묻혀 학문과 저술, 후학양성에 전념한 순수한 사림의 학자였습니다. 그는 무오사화와 을묘사화를 목격하고는 벼슬길을 단념하고 당시 삼족당(三足堂) 김대유와 함께 청도지역에서 처음으로 운문산 아래에 사창(社倉)을 지어 흉년과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을 위해 환곡법을 시행하는 등 빈민구제사업에 전념했습니다.

당시 남명(南冥) 조식, 삼족당 김대유, 경재(警齋) 곽순, 송당(松堂) 박영, 청송(聽松) 성수침, 신재(愼齋) 주세붕, 송계(松溪) 신계성 등 국내 굴지의 명유석학들이 소요당을 찾아 학문을 토론하였습니다. 특히 남명과 삼족당은 절친하게 지냈습니다. 만화정은 바로 이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 만화정(萬和亭).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운강 박시묵은 퇴계학통의 정맥을 이은 정재(定齋) 류치명의 제자입니다. 부친이 지은 집을 더 확장하여 만화정(萬和亭)이란 이름을 걸었습니다. 당시 명유로 꼽히는 만귀(晩歸) 이주현, 응와(凝窩) 이원조, 류주목, 허전 등이 만화정 기문을 남겼습니다.
 
운강은 조선말 열강의 침략과 서학의 혼란기에 조선의 선비로서 자주적인 근대화 교육을 과감히 시행, 고종 9년(1872)에 강학소를 설치하여 전통서원교육을 개혁하였습니다. 강학 장소는 만화정과 대비정사 등의 건물을 이용하였고 종래 서원에서 한 사람의 스승에게 수업받던 방식을 보완하여 전문분야의 여러 강사를 초청하여 수업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학생은 자계서원, 남계서원, 명계서원, 선암서원 등에서 추천을 받아 선발하였습니다. 운강은 이들 서원으로부터 강학소 운영기금을 일부 지원받기도 하였지만 실상은 사재를 털어 전액 장학제도에 의해 후진을 양성하였습니다. 운강이 설립한 강학소는 학생들에게 학비 지원은 물론이고 숙식까지 제공하여 학생들이 학문에만 종사할 수 있도록 제반조건을 갖추었습니다. 이는 근대화교육 장학제도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운강은 나라의 운명을 오직 교육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만화정 앞 고목

만화란 뜻의 요지는 본래 운문들판 이름이 만화평(萬花坪)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집은 만화평을 굽어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에 운강은 만화(萬花)의 화(花)자가 화(和)와 소리가 같은 점에 착안하여 화(花)자를 화(和)로 바꾸어 만화정(萬和亭)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화(和)의 뜻은 중용에서 '중(中)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는 '천하에 통용되는 도(道)'라고 한 데에 비롯되었습니다.
 
운강이 만화를 읊은 주옹만영이란 시는 이러합니다.
 
이 하나의 마음이 화하면 기운도 화한 법 (這箇心和氣亦和)
나의 마음과 기운을 화하게 하여야 중화를 이루리라 (和吾心氣致中和)
냇물이 사해로 귀의함이 모두 살아 있는 것 같고 (川歸四海渾如活)
온 산에 꽃 핌은 모두 함께 화의 기운 얻음이라 (花發千山共得和)
풍채와 운치는 다 같이 삼대(夏殷周)의 순후한 학풍으로 돌아가리 (風韻同歸三代學)
공부는 요컨대 한 덩이 화에 있음이로다 (工夫要在一團和)
세간 만사 화가 귀한 것이니 (世間萬事和爲貴)
일마다 오직 화하면 모든 만사가 다 화하리라 (事事惟和卽萬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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