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유호연지(柳湖蓮池) 문화·유적

- 군자정(君子亭)의 출입문에 해당하는 일감문(一鑑門)


북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는 넓은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유호연지(柳湖蓮池)라고 부르는 이 연못은
조선 중종 때 모헌(慕軒) 이육(李育)이 만든 것으로, 그는 갑자사화 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신라지(新羅池)라 불리던 연못을 넓혀 연꽃을 심고 유호연지(柳湖蓮池)라 이름 지었습니다. 유호연지(柳湖蓮池)는 "버드나무 두른, 연꽃 피는 연못"이란 뜻입니다.

이육의 형제들은 김종직의 제자로 관직에 나갔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말미암아 죽거나 유배되었거나 혹은 이육처럼 은둔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 땅은 넓지 않으나 비옥한 곳입니다.
이런 연유로 이곳은 무오사화를 피해 청도로 이주한 고성 이씨 세거지가 되었으며, 유호연지도 고성 이씨의 개인 소유지라 합니다.
- 군자정
(君子亭)

연못 동편에 군자정(君子亭)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이 정자는 1531년(중종 26년)에 세운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0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군자정은 인공으로 만든 섬 위에 세워져 있으며, 다리를 건너 일감문(一鑑門)을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 군자정 양편으로 작은 두 개의 섬을 만들어 놓았는데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 군자정 내부 모습. '모헌정사'(慕軒精舍)라 적은 현판 글씨의 '모헌'은 이육의 호를 말합니다.


연꽃은 풍류의 대상이자 군자의 상징입니다.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는 모란을 부귀한 자로 비유하면서, 국화를 숨은 선비(隱士)로, 그리고 연꽃을 군자(君子)로 비유하였습니다.

이육이 이곳에 연꽃을 심은 뜻은 비록 몸은 주류에서 쫓겨나 은둔하게 되었으나 연꽃처럼 청정한 군자의 삶을 살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요?

- 철 지난 유호연지


유호연지는 면적이 20,600평, 둘레가 약 700m이며, 중앙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꽃으로 덮여 있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이곳은 평소에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낚시꾼들로, 연꽃이 피는 계절에는 사진 애호가들로 북적거리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청도 팔경에 들어가는 이 연못은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음력 8월16일이 되면 이곳에 모여서 연꽃을 감상하면서 회포도 풀고 정도 나누는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당시 선비들은 군자정 강계(君子亭 講契)를 조직하여 음력 8월 18일에 강회를 열었는데, 이 행사는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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