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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7 10:44

보물로 가득 찬 금산사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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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다층석탑

산사에는 특이한 모습의 석탑이 있습니다.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이라 부르는 이 석탑은 금산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에 있는데, 원래는 금산사에 속했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탑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석탑은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렇게 점판암으로 만든 탑은 고려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점판암으로 만든 탑은 형태에 있어서도 육각, 팔각 등 다각형 석탑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탑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단은 3단으로 된 육각형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각 단 측면에는 사자상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그 위부터는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형의 복련대석(伏蓮臺石)과 앙련대석(仰蓮臺石)이 놓여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원래 이 중간에 기단 중대석이 끼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탑신부는 가장 위쪽의 2개의 탑신과 11개의 옥개석만이 남아 있습니다만 원래는 12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아 있는 탑신의 육각면에는 면마다 좌불상이 선각 되어 있고, 모서리에는 우주(隅柱)을 새겼습니다.
원래 있던 상륜부는 없어지고 새로 만든 것으로 대신 올려놓았습니다.

이 석탑은 고려 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혜덕왕사가 금산사를 크게 확장하여 봉천원(奉天院)과 광덕원(廣德院)의 두 구역을 넓힐 때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 석련대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좌의 줄임말로, 즉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를 말합니다. 이러한 연화대좌를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금산사 석련대는 그 형태가 드물 뿐만 아니라 크기 또한 매우 거대합니다. 이 석련대는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10m쯤 되는 돌단 밑에 있는데,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지 못합니다.

한 개의 돌로 조각한 것이지만 여러 개의 돌을 사용한 것처럼 상·중·하의 구성이 뚜렷합니다. 상대석는 윗면이 평평하며 중앙에 불상의 양발을 세워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밑면에는 윗면을 떠받치는 연꽃이 에워싸고 있으며, 꽃잎 사이에도 작은 잎들이 틈틈이 새겨져 있어 더욱 화려해 보입니다. 반면에 중대석는 육각형으로 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대석는 엎어놓은 연꽃모양이 출렁이는 물결무늬처럼 전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석련대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인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 노주석


금산사 노주석은 원래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입니다.
 
꼭대기에는 석탑의 머리 장식이 남아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노주석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즉 탑 꼭대기에 있는 찰주를 노반지주라 부르는 데서 이 이름이 비롯된 것입니다. 만일 꼭대기에 얹힌 꽃봉오리 모양의 조각만 없다면 불상이 앉는 사각형의 대좌로 볼 수도 있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산사에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노주석'는 잘못된 명칭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광명대'로 미륵전 앞에서 미륵불에게 광명을 공양하던 석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보는 형태는 불을 밝히는 곳인 화사석이 없어진 상태인 셈입니다.

도대체 어느 말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받침돌에 새겨진 조각의 양식이나 각 부분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진 게 아닌가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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