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신흥사 대광전 문화·유적

- 신흥사 대광전


흥사(新興寺)는 매화로 유명한 양산 영포마을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영포마을의 절곡(寺谷)이란 곳에 있으며, 이천산 줄기 아래에 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절의 배치는 남향을 하고 있는 대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전면에 천왕문, 동쪽에 응향각, 서쪽에 범종각, 남서쪽 한 단 낮은 곳에 적묵당과 요사채가 있는, □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 대광전 앞뜰의 동백꽃


신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신라시대 원효대사(617~686)가 처음 개창했다고 전합니다.

지금 신흥사는 대광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라 오래된 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적한 멋은 덜한 편입니다. 하지만 신흥사에는 대광전이 있기에 발길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신흥사에서
가장 고색창연한 건물인 대광전의 건축 연대는 1988년 대광전 해체 보수공사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이때 발견된 암막새 기와에 ‘順治 十年 四月(순치10년 4월)’이라고 쓴 명문(銘文)을 나와 조선 효종 4년(1653년)에 대광전에 사용할 기와를 제작한 사실이 밝혀졌고, 종도리 뱃바닥에서 발견된 묵서된 상량기에 ‘順治 十四年 丁酉年 四月 十七日 上樑(순치 14년 정유년 4월 17일 상량)’이란 기록이 있어 효종 8년(1657년)에 현재의 대광전이 지어졌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신흥사대웅전중수기〉현판의 嘉慶六年 辛酉七月(가경육년 신유칠월)’이란 기록에 의해 순조 1년(1801년)에 다시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대광전 내부 모습


대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으며, 기단은 넓은 마당에서 자연석으로 쌓은 다음 외벌대로 하였습니다.
기둥 높이는 주칸에 비해 다소 높고, 약한 배흘림을 하였습니다.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
·후면의 어칸과 좌우 협칸에는 모두 문을 달았습니다. 나머지 양 측면의 어칸은 벽체로 마감하고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벽화로 장식하였습니다.
- 벽에 그려진 여래상


건물의 좌우 측벽과 후불벽 뒷벽 등에는 17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관음삼존도와 약사삼존도, 아미타삼존도, 팔상도 및 6대보살도, 신장도와 여래도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건물 내부에는 여러 벽화뿐만 아니라 건립 당시의 단청 또한 그대로 남아있어 뛰어난 색채와 훌륭한 문양을
지금도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주 머리 부분에 그려진 여래상들은 그 유례가 없고 화풍과 필치 또한 뛰어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후불벽(後佛壁) 뒷벽에 그려진 관음삼존도

후불벽화로 그려진 관음삼존도는 우리나라 어느 전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을 이루고 있어 주목됩니다.

대체로 대웅전 후불벽 뒷면에 묘사되는 벽화는 관음신앙의 유행에 의하여 대부분 관음독존의 채색화입니다. 신흥사 역시 후불벽 뒷면에는 관음상을 묘사하였는데, 독존이 아닌 관음삼존도입니다. 또한 검은 바탕에 흰 선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중앙에는 수월관음좌상을 배치하고 좌우에 다시 관음입상 2존을 함께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의 조성은 대광전의 건립 시기인 17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 삼존불


신흥사 대광전(大光殿)에 모셔진 주불(主佛)은 대광전이란 불전의 이름으로 보아선 비로자나불이어야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모셔진 주불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지 않아 비로자나불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불전과 모셔진 주불이 서로 맞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남아 있는 <신흥사대웅전중수기〉현판으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지금의 대광전은 원래 대웅전이었으며 후에 대광전으로 이름이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삼존불 뒤 후불벽에는 후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특이하게도 후불벽과 불단 상부 천정에는 장엄장식이나 닫집을 설치하지 않고 우물천장에 소란(小欄)반자를 넓게 두었습니다.

신흥사 대광전은 1992년 1월 15일 보물 제112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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