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nst Ludwig Kirchner 미술

Ernst Ludwig Kirchner
(German,1880~1938), Berlin Street Scene, 1913, Oil on canvas, 121 x 95cm.

르히너의 대표작으로 꼽는 <베를린의 거리 풍경>입니다. 키르히너는 같은 주제로 열두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키르히너는 이 그림에서 배경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인물들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제목과는 달리 거리 풍경은 최소화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각이 지고 긴 인물들의 얼굴로 그림을 빼곡히 채웠는데, 중앙에 있는 코트 깃을 세우고 깃털을 장식한 독특한 모자를 쓴, 날씬하고 키가 큰 두 여인이 그녀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을 압도합니다. 이들은 바로 매춘부로, 당시 유행어로 코코테(Kokotte)입니다.

이 그림에서 관심을 끄는 인물로는 우선 빨간 깃털 모자를 쓴 여인으로, 그녀에게서 '숙녀답지 못한' 시선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빨간색으로 칠한 입술은 계산적인 미소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그녀가 쳐다보는 시선 쪽으로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남자의 머리는 해부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방식으로 돌려져 있으며, 얼굴은 창녀가 쳐다보는 것에 대해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거리 풍경>에서처럼 이주해온 노동자 가문 출신의 매춘부들은 당시 베를린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코코테는 밤거리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키르히너는 그 매춘부들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키르히너가 다루고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집단들의 문제점이나 사회적 고통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관계, 돈에 의해 결정된 관계가 본질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도시의 메카니즘입니다.

A Group of Artists: Otto Mueller, Kirchner, Heckel, Schmidt-Rottluff
1926~1927, Oil on canvas, 168 x 1260 cm, Museum Ludwig, Cologne.


키르히너는 표현주의 미술가 그룹인 브뤼케파(다리파)를 이끈 인물로서, 그의 독특한 그림은 매우 개성적이며 심리적 긴장감과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합니다.

키르히너는 일찌기 독일의 후기 고딕시대의 미술가들, 특히 그에게 평생 영향을 미친 뒤러의 판화에 감명을 받았으며, 또한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인 뭉크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단순한 형태와 밝은 색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폴리네시아의 미술을 접하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키르히너는 1901~1905년 드레스덴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으나, 그림에 매료되어 1905년 에리히 헤켈 및 카를 슈미트 로틀루프와 함께 '브뤼케'를 창설했습니다. 키르히너에게 있어서 진정한 미술은 내면세계의 갈등을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시각적인 매체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흐와 뭉크의 감성 위주의 작품들을 미술의 표준으로서 삼았습니다.

Berlin Street Scene, 1913, 120 x 91 cm, MoMA, New York.

키르히너의 작품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티스를 비롯한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들의 그림에 가깝지만 그림의 형태들이 갖는 들쭉날쭉한 윤곽선과 긴장된 얼굴 표정은 야수파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 상당수가 증오와 그리고 에로티시즘에 대한 집착을 보여줍니다.

<베를린의 거리 풍경>(1913, 뉴욕 현대미술관)은 베를린의 도시사회에 대한 그의 냉소적인 시각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 Bathers at Moritzburg>(1908, 스위스 에토이 F. 바우어 컬렉션)과 같은 누드 스케치들은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경우가 많으며, 석판화 <누드와 남자의 머리 Head of a Man with a Nude>(1908)에서는 성적인 침해에 대한 그의 환상이 악몽같이 강렬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Umbra Vitae


1911년 '브뤼케' 회원들은 베를린으로 활동무대를 옮겼으며, 키르히너는 그곳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독일의 주요한 전위잡지인 <질풍 Der Sturm>을 위해 훌륭한 목판화들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슐레밀 기담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1915)과 표현주의 시인 게오르크 하임의 시 <움브라 비타이 Umbra Vitae>(1924)에 실려 있는 그의 삽화들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동판화로 평가됩니다.

Bern with Belltower, 1935, Oil on canvas, 70.5 x 80.6 cm.

키르히너는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지자 스위스로 갔습니다. 그의 후기 풍경화들은 대개 우의적이며 문명에 시달리지 않고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나치가 그의 작품을 '퇴폐적'이라고
공표하고 탄압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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