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뿌리 사진


금껏 내가 본 책 표지 가운데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널리 알려진 조세희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침묵의 뿌리>라는 사진-산문집의 표지를 들 수 있습니다.

유신체제가 붕괴한 직후인 1980년은 정치적 혼란 속에 민주화의 싹을 움이나마 띄우려고 몸부림칠 때입니다. 이때 사북에서는 광부들이 생존권을 위한 파업을 벌였는데, 이를 사북사태라고 합니다. 사북사태가 있은지 몇 년이 지난 1984년 여름과 다음해인 1985년 겨울에 조세희는 사북을 찾아 그곳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의 모습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책 한 권이 바로 <침묵의 뿌리>라는 사진-산문집입니다.

- 1985년 3월, 사북에서

사북사태는 1980년 4월 21부터 4월 24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부들이 일으킨 총파업사건을 말합니다. 동원탄좌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동조합의 어용성 및 유신체제의 와해로 말미암아 전반적인 민주화 요구의 등장 등이 파업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당시의 노조위원장이었던 이재기가 광산노동조합연맹 전국지부장회의에서 결정된 42.7%의 임금인상안을 무시하고, 4월 15일 회사 측과 비밀리에 20% 인상에 합의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에 광부들은 즉시 '위원장 사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광부 5명이 경찰차에 치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흥분한 광부들은 사북읍으로 가두진출을 하여 경찰과 무력충돌하면서 4월 22일 오후 2시경 사북읍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4월 24일 대책위원회와의 2차 협상에서 11개 항에 합의함으로써 파업은 종결되었으나,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로 70여 명의 광부·부녀자들이 경찰과 군대에 의해 연행되고 40여 명이 구속되었습니다.

- 1985년 2월~3월, 사북에서

조세희의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는 그의 소설 못지않게, 그리고 수많은 직업 사진가들의 현장사진 이상으로 현실 속의 진실성을 보여줍니다. 이런 그의 단순하면서도 가식 없는 흑백사진들은 어떤 사진들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합니다.

- 1985년 2월, 사북에서

<침묵의 뿌리>는 1985년 9월 5일 열화당에서 초판이 출판되었습니다.

즘엔 출판된 책표지에는 제목 밑에 '사진-산문집'이라고 되어 있는 모양인데, 처음에는 '제3 작품집'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책을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 먼지를 털고 펼쳐 보니, 정병규와 차명숙 두 분이 디자인을 맡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얀 모조지 위에 인쇄된 사진들은 대개가 활자만큼이나 새까매 세월이 2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아직도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 1985년 2월~3월, 사북에서

조세희는 이 책 첫머리에서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 조세희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지금,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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