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etc.

- 진전사
()터 (사진: 이주석)

자의 '호접몽'(胡蝶夢, 나비의 꿈)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장자는 제자를 불러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내가 어젯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꿈에서 깨어났다. 깨고 보니 나는 나비가 아니라 내가 아닌가?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꿈에서 깨고 보니 분명히 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알쏭달쏭한 스승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의 이야기는 실로 그럴 듯하지만 너무나 크고 황당하여 현실세계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자 장자가 말하기를, "너는 쓸모 있음과 없음을 구분하는구나. 그러면 네가 서 있는 땅을 한번 내려다보아라. 너에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너의 발이 딛고 서 있는 발바닥 크기만큼의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너에게 쓸모가 없다. 그러나 만약 너가 딛고 선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땅을 없애버린다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작은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

제자가 아무 말도 못하고 발끝만 내려다보고 있자 장자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너에게 정말 필요한 땅은 너가 디디고 있는 그 땅이 아니라 너를 떠받쳐주는, 바로 너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나머지 부분이다."
- 진전사터 (사진: 양진)


이처럼 중국에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조신의 꿈' 이야기가 있습니다.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조신의 꿈'(調信夢) 이야기를 쓰며 지은 시입니다.

'조신의 꿈'은 장자의 '호접몽'만큼이나 삼국유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위의 일연 스님의 시와 연관시켜 다시 한 번 읽어봄도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다음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조신의 꿈' 내용입니다. 


옛날, 신라 시대에 세규사란 절의 장원(莊園)이 명주 날리군에 있었다. 본사에서는 승려 조신(調信)을 그 절의 관리인으로 파견했다. 조신은 그 장원에 와 있으면서 태수 김흔의 딸을 좋아하여 깊이 반했다. 그는 누차 낙산사의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그녀와 인연이 맺어지기를 남몰래 빌었다. 이러기를 수년간, 그 사이 김흔의 딸은 시집을 가 버리고 말았다. 조신은 관음보살이 자기의 비원을 성취시켜 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슬피 울었다. 날이 저물 무렵 그의 사념은 지칠 대로 지쳐서 깜빡 풋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그 김씨 처녀가 반가운 얼굴로 조신을 찾아와 함빡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대사님의 모습을 어렴풋이 알고부터는 마음속 깊이 사모해 왔었지요. 잠시도 대사님을 잊은 적이 없었어요.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시집을 갔었지만, 죽어서도 대사님과 한 무덤에 묻힐 반려자가 되고 싶어 지금 이렇게 왔어요."

조신은 기뻐 어쩔 줄을 몰라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사십여 년의 세월을 살았다. 그런데 자녀만 다섯이나 생겼을 뿐 집안은 휑뎅그렁하여 남은 것이라곤 없었다. 나물죽마저도 넉넉하지 못했다. 드디어 실의에 찬 몰골로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간신히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십 년간 초야를 두루 유랑했다. 너덜너덜 헤어진 옷은 몸을 가리지 못했다. 명주 해현 고개를 지날 때 열다섯 난 큰아이가 굶어 죽었다. 통곡을 하며 시체를 거두어 길에다 묻었다.
남은 네 자녀들을 데리고 우곡현으로 왔다. 길 곁에다 띠풀로 집을 엮어 살았다. 부부는 이미 늙고 병이 들었으며 굶주림에 지쳐 일어나 다니지를 못했다. 열 살 난 딸아이가 돌아다니며 걸식을 했다. 그러나 그 딸아이마저 마을의 개에게 물려 아파서 울부짖으며 그들 앞에 누우니, 부부는 탄식을 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내가 눈물을 훔치고 나더니 돌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땐 얼굴도 아름다웠고 나이도 젊었습니다. 그리고 의복도 깨끗하고 고왔습니다. 한 가지라도 맛좋은 음식이 있으면 당신과 나누어 먹었고, 두어 자 옷감이 생겨도 당신과 함께 지어 입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지 오십 년, 정은 더할 수 없이 쌓였고, 사랑은 얽히고 얽혀 정말 두터운 연분이라 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근년 이래로 노쇠와 병고는 날로 더욱 깊어 가고, 춥고 배고픔으로 날로 더욱 핍박받게 되었습니다. 남의 집 곁방살이와 간장 한 병의 구걸도 사람들은 용납해 주지 않았고, 수많은 집 문전에서의 그 수치는 무겁기가 산더미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지쳐 있어도 그걸 면하게 해 주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애정을 즐기겠습니까? 젊은 얼굴, 예쁜 웃음은 풀잎 위의 이슬과 같고, 굳고도 향기롭던 그 가약도 한갓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 같을 뿐입니다. 당신에겐 내가 있어 짐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지난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번뇌로 오르는 계단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요? 뭇 새가 모여 있다 함께 굶어 죽기보다는 차라리 짝없는 난 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여러 식구가 모여서 고생하다가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헤어져서 각기 먹고살 방법을 찾으면서 서로 그리워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라는 뜻) 순경일 때는 친하고 역경일 때는 버리는 것이 인정상 차마 못 할 짓이긴 합니다만, 가고 머무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에는 운명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여기서 서로 헤어지도록 하십시다."

조신은 아내의 제의를 듣고 무척 반가워했다. 네 아이를 각각 둘씩 나누어 갈라서려 할 때 아내가 말했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서로 잡았던 손을 막 놓고 돌아서서 길을 나서려 할 때, 조신은 꿈에서 깨어났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빡거리고, 밤은 이윽히 깊어 가고 있는 참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조신은 머리털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는 멍청히 넋이 나간 듯, 인간 세상에 뜻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미 인간의 그 고된 생애에서의 염증의 느껴짐이 마치 실제로 백 년의 고생을 모조리 겪기라도 한 듯했다. 탐욕이 얼음 녹아 버리듯 말끔히 가시었다. 조신은 관음보살의 성스러운 모습을 부끄러이 우러르며 참회를 금하지 못했다. 해현으로 가서 꿈속에서 굶어 죽은 큰아이를 묻었던 자리를 파 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깨끗이 씻어서 그 부근의 절에다 봉안하고, 조신은 서울로 돌아가 절 관리의 임무를 벗었다. 그리고 개인재산을 들여서 정토사를 세우고 부지런히 선행을 쌓더니, 나중에는 그 종적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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