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석빙고(靈山 石氷庫) 문화·유적

- 영산 석빙고


재 우리나라에는 모두 7개의 석빙고가 남아 있습니다. 경북지방에 청도, 현풍, 경주, 안동에 있고, 경남지방에는 창녕, 영산에 있으며, 북한의 황해도 해주에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18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주로 경상도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한 일입니다.

영산 석빙고(靈山 石氷庫)는
인근의 창녕 석빙고에 비하면 작고 아담한 편입니다. 화강암으로 쌓은 이 얼음창고는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조선 후기의 읍지에 따르면 18세기 중엽에 현감 윤치일이 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 영산 석빙고는 만든 시기나 수법은 창녕 석빙고(1742년)와 거의 같은 18세기 중엽으로 추정됩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남쪽으로 출입문이 나 있으며, 이 출입문쪽이 높고 그 반대쪽이 낮은 무덤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봉토 주변에 자연석을 쌓아 호석을 둘렀고, 꼭대기에는 두 곳에 배기공이 있습니다. 출입문은 땅표면보다 한 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 있는 돌계단 끝에 있습니다. 거칠게 다듬은 거대한 돌로 벽을 쌓고, 세 틀의 홍예를 바깥쪽으로 내고, 그 위에 판석을 덮어 얼음을 보관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 영산 석빙고 내부 모습


영산 석빙고를 찾은 날은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벌써부터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밖은 무덥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석빙고 출입문 앞은 거짓말처럼 시원해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하였습니다. 입구가 이처럼 시원한 걸로 봐선 출입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석빙고 안은 마치 냉방이 잘된 실내와 같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 창녕 석빙고


영산 석빙고는 인근에 있는 창녕 석빙고나 현풍 석빙고와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영산 석빙고는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진 다른 석빙고들과 같이 개울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지하로 되어 있는 저장공간을 살펴보면,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겉모양은 마치 큼직한 고분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나, 내부는 석재를 써서 장방형의 빙실(氷室)을 이루고,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 현풍 석빙고


위치적으로 창녕 석빙고와 현풍 석빙고는 앞쪽으로 작은 하천을 두었고, 그 하천과 직각으로 설치돼 있습니다. 또한 석빙고보다 낮은 곳에 있는 하천의 반대쪽으로 석빙고의 입구를 뒀습니다. 지금 현풍 석빙고 앞으로는 현풍천이 흐르고 있으나, 창녕 석빙고 앞쪽의 하천은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되고 있어 그 모습을 잃었습니다. 영산 석빙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산 석빙고 앞쪽에 구계리 계곡에서 흐르는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개울물이 많이 말랐지만 이는 상류에 제방을 쌓았기 때문이며 옛날에는 수량이 풍부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얼음을 보관한 창고에 대한 기록은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의 노례왕(유리왕)편에 처음 언급되어 있습니다. 노례왕은 신라시대 세번째 왕으로 박혁거세의 손자입니다. 삼국유사에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상세한 기록이 없어 당시 얼음을 보관한 창고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주 오래전부터 얼음을 보관해 사용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 힘으로 얼음을 만드는 재주가 없던 옛날에는 겨울에 마련한 얼음을 석빙고와 같은 얼음창고에 넣어 짚과 풀로 덮고 꽁꽁 닫아
녹지 않게 갈무리해 봄여름 가을에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냉장고와 같은 역할을 한 게 바로 석빙고이며, 이런 석빙고에서 옛사람의 지혜를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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