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 감독의 9번째 장편 연출작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구경남'이라는 한 영화감독이 제천과 제주에서 비슷하지만 알고 보면 다른 면이 많은 두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그의 영화 중 가장 유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는 그가 만든 영화 가운데 흥행에서도 성공작이라고 하여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 수가 상당히 많았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수가 4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치곤 많은 사람이 봤다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다른 영화들은 거의 독립영화 수준의 관객이 보았다는 이야기인지….
이 영화에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공형진, 하정우, 유준상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기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였으니, 관객 수 4만은 그다지 내세울 일은 아니며 더구나 흥행 운운하는 일은 사실 낯 간지러운 일입니다. 그나마 영화 제작비가 약 1억 8천만원밖에 안 들었기에 적자는 면했다고는 하지만, 이나마도 출연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홍상수의 영화는 (일단 작품성은 제쳐놓고) 흥행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입니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 우리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그것도 맨송맨송하게 만든 그의 영화를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찾아가 볼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홍상수 감독이 우리 영화에 있어 그저 그렇고 그런 별 볼일 없는 감독이란 뜻은 결코 아닙니다. 내놓아라 하는 유명 인기배우들도 흔쾌히 그의 영화에 노개런티로 출연하는 것을 보면 그의 능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그의 힘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상업성을 생각하여 타협하기보다는 감독 자신이 만들고 싶은 원래의 의도대로 만드는 그의 끈기있는 고집 때문인가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시작해 <강원도의 힘>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거쳐 <극장전>에 이르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홍상수가 늘 관심을 두는 주제는 심오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교훈적인 것도 아닌, 남녀 간의 시시콜콜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극히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그의 영화의 주제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늘 보는 일상을 그저 스크린 위에서 다시 한번 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는 가끔 한번 킥킥거리게 하며 밑도 끝도 없이 끝납니다. 관객의 입장에선 어찌 보면 무책임하고 황당한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크게 보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제천에서의 이야기, 후반부는 제주에서의 이야기로 말입니다. 이 두 이야기 사이에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천에서의 이야기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영화감독 구경남(구경하는 남자, 방관자)과 영화제 프로그래머인 공현희(공연히와는 발음이 거의 같음) 사이에 일어난 사사로운 이야기 하나와, 후배 부상용(부상당한 용사를 떠올리는 이름)과 그의 아내 유신(새롭게 바꾼다는 의미에 주목), 그리고 구경남 사이에 일어난 뜻하지 않은 오해 하나가 주된 줄거리를 차지합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 구경남이 홍상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영화 속의 이야기도 자신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처럼 시시콜콜한 사랑 이야기를 줄곧 다루는 이유를 이 영화 속의 확신에 찬 부상용의 대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짝을 만나는 데 있어.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기와 가장 잘 맞는 짝을 만나면 사람은 정말 행복해진다니까."
하나 더. 구경남을 유일하게 존경한다는 부상용이 하룻밤 사이에 절교선언을 하게 만든 일이 과연 무엇일까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궁금증이 계속 머리에 맴돕니다. 부상용의 집에서 보낸 하룻밤 동안 구경남과 유신 사이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홍상수 감독은 영화 속에서 그 내용을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무책임하게 보일 만큼 전적으로 관객의 상상에 맡겨둡니다. 홍상수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영화 후반은 전반부에서 열이틀 흐른 후 구경남이 '제주 영상아카데미' 초청을 받아 제주로 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제주에서의 이야기는 구경남과 까마득한 선배화가인 양천수, 그리고 예전에 그가 좋아했던 여자 고순(지고지순을 떠올리게 함), 이렇게 세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고순이 양천수의 새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기는 이들의 삼각관계가 이야기의 큰 틀을 차지합니다.
이 영화는 누가 뭐라 해도 홍상수 자신의 이야기란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제주 영상아카데미'에서 자신의 영화와 관련하여서 한 여학생의 도발적인 질문에 구경남이 대답한 말에서 이런 느낌을 더욱 굳히게 됩니다.
한 여학생이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를 만드세요?"란 질문에 "이해가 안 가면 안 가는 거죠.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 영화는 특별한 갈등구조나 이야기도 없고, 현란한 화면도 요란한 음악도 없습니다. 그저 제가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들을 한데 묶어내고 그걸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토로합니다.
이는 홍상수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에 대해 영화 속에나마 나름대로 해명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다시 영화 스토리로 돌아와서, 제주에서 구경남은 술자리에서 양천수의 위선적인 면을 보게 되며, 더구나 그의 새 아내가 바로 옛 애인 고순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여러모로 심란해집니다. 어쩌다 이 두 사람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나, 운도 지지리도 없게 그만 이웃 사람에게 들키게 됩니다. 결국 이 일은 한순간의 추억으로 남게 되고, 바닷가에서 구경남이 고순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지 마. 아는 만큼만 안다고 그래."
그래요. 나 자신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글을 씁니다.
태그 :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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