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ure from Emptiness

hanulh.egloos.com

마이가든 포토로그



2009/07/06 08:07

창녕 탑금당 치성문기비 문화유적

- 창녕 탑금당 치성문기비의
전경

녕에 있는 탑금당 치성문기비(塔金堂 治成文記碑)는 그 이름이 마치 난해한 난수표처럼 처음 들으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어림잡기가 어렵습니다. 이 이름은 탑과 금당을 세우거니 고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란 걸 의미하는데, 좀 더 알기 쉽게 이름을 붙였더라도 좋았을 것입니다.

이 비석은 비석에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인 헌덕왕 2년(810년)에 인양사(仁陽寺) 금당(金堂) 후편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대의 전답에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문양의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당시에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비석은 귀부와 이수 대신에 장방형의 받침돌과 사모지붕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비석에는 불사 조성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양사(仁陽寺)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 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탑, 불상, 금당, 요사 등의 조성연대와 소요된 양식에 관하여 낱낱이 기재하였습니다.


앞면과 양 측면에는 비문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우아한 기법으로 승려상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비문은 특이하게 비의 이름, 즉 비액이나 제명도 없이 앞면에는 10줄에 걸쳐 줄마다 28자씩, 오른쪽 옆면에는 26자씩 2줄, 왼쪽 옆면에는 25자 1줄이 새겨져 있습니다.
- 탑금당 치성문기비의 앞면


비문의 첫 줄에 "원화오년 경인 유월 삼일 순표○탑 금당치성문기지 신해년 인양사/종성 신유년 육사 안거 식육백육석(元和五年庚寅六月三日順表▨塔金堂治成文記之辛亥年仁陽寺/鍾成辛酉年六寺安居食六百六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데, 원화 5년은 이 비석을 세운 해를 말하며 신라 헌덕왕 2년(810년)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혜공왕 7년(771년)부터 헌덕왕 2년(810)까지 약 40년간 어느 스님이 인양사를 비롯한 여러 절에서 이룩한 많은 불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 탑금당 치성문기비의 뒷면


이 비석의 가장 특이한 점은 뒷면에 인물상이 새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인물상을 일부에선 지장보살이라고도 하나,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많은 불사에 공덕을 쌓은 스님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이처럼 빗돌의 한 면에 인물상, 그것도 불보살상이 아닌 승려상을 조각한 예는 이 경우가 유일할 것입니다.

- 탑금당 치성문기비 뒷면의 승려상


이 승려상은 머리 생김새가 무척 반듯하여 도가 높은 수행자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세심한 조각이라고까지야 말할 수 없지만 귓바퀴까지 표현한 걸 보면 대강한 조각은 아닌 듯한데,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조각은 그리 우수한 편이 못 됩니다.

폭이 좁은 비면을 최대한 이용했지만, 몸은 굴곡이 없고 옹색합니다. 곧게 늘어뜨린 오른손은 너무 길어 조화를 잃었습니다. 늘어진 커튼처럼 일정하게 주름이 잡힌 옷자락도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승려상은 "8세기의 이상주의가 사라지고 9세기의 새로운 양식이 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조각"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hanulh.egloos.com/tb/4433246 [도움말]

덧글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