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이국땅까지 건너간 반가사유상 문화·유적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 半跏思惟像), 삼국시대 7세기 중반, 금동제, 높이 22.5cm 폭 10.2cm 지름 10.8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리나라 불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석굴암의 본존불과 함께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 半跏思惟像)을 가장 먼저 꼽습니다.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소개할 때 석굴암 본존불만큼이나 곧잘 등장하여, 직접 보진 못했더라도 한 번쯤은 사진으로나마 보았을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상입니다.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은 그 모습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남아있는 숫자 또한 드물어 매우 귀하게 여기는 불상입니다. 이런 반가사유상을 먼 이국땅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데,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반가사유상은 높이가 22.5cm로 비교적 작은 크기의 금동불상입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만든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을 만큼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합니다. 이 반가사유상은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한 발을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리고 한 손은 가볍게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전형적인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金銅 彌勒菩薩 半跏思惟像),
삼국시대 7세기 중반, 금동제, 높이 22.5cm 폭 10.2cm 지름 10.8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그러면 왜 이런 모습의 불상을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반가사유상은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불상의 자세로, 둥근 의자에 걸터앉아 오른쪽 발 하나를 올려서 다른 쪽 다리 무릎 위에 얹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오른손을 들어서 손끝을 턱에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입니다.

첫 번째 모습을 반가(半跏)양식이라고 부르며, 두 번째 모습을 사유(思惟)양식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반가사유상은 이 두 가지 모습을 합하여 부르는 명칭입니다. 그리고 이런 반가사유상은 일반적으로 미륵보살로 추정되므로 좀 더 자세히 부를 때에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라 합니다. 하지만 보통 짧게 줄여서 '반가상' 또는 '반가사유상'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양식의 불상은 인도 서북방 지역인 파키스탄, 즉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불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나타났습니다. 이 지방은 일찍부터 서방의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을 받아들여 석가모니 열반 후 불상을 만들지 않던 관습을 깨고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에 만든 반가사유상은 태자(太子)상의 모습이었는데, 이는 바로 석가여래가 젊은 시절 왕궁을 빠져나와 속세로 들어가 수도하면서 깊은 사유에 잠겼을 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양식이 중국에 들어와 처음에는 인도와 같이 태자상으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미륵보살로 바뀌었으며,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당시 삼국에 크게 유행하던 미륵신앙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은 미륵불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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