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애니메이션, <9> 영화


목이 숫자로만 된 영화를 보면 왠지 음울한 느낌부터 받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브래드 피트와 모간 프리만이 출연한 <세븐>이란 영화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9>란 영화도 제목만 보고는 이 역시 음울한 영화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9>는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고, 그것도 팀 버튼이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이니 뭐가 달라도 좀 다를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기본틀은 미래의 어느 때에 괴물기계와 봉제인형의 대결을 그린 것인데, 악으로 표현되는 괴물기계는 엄청난 힘을 가진 무자비한 살인병기이고, 반면에 주인공인 봉제인형은 작고 연약하며 힘없는 존재입니다. 이 괴물기계가 인간성이 상실된 기술만능의 과학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봉제인형은 인간성, 그 자체를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파괴적인 힘만 남은 기술만능의 세계와 연약해 보이지만 인간성이 살아 있는 세계의 대결로 볼 수 있습니다.
- 주인공인 '9
'

미래를 그린 SF영화는 한결같이 핵전쟁 후 모든 게 파괴된 황량하고 음울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거나, 아니면 로봇과 같은 기계 인간이 지배하는 살벌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아마도 이처럼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후 고도의 과학기술이 가져온 엄청난 파괴력과 살상력의 어두운 기억들이 무겁게 각인된 탓이 클 것입니다.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의 운명마저 쥐게 된 인간이 탐욕과 이기심으로 이런 자신의 힘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의 발로이기도 하겠죠.

<9>란 영화도 이런 배경을 깔고 만든 SF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SF영화와는 달리
상당히 예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탓에 그다지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의 모습처럼 보일 정도로 SF영화치곤 복고적인 느낌이 강해, 미래이지만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래서인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배경이 묘하게 결합한 듯한 환상적 분위기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느낌은 괴물기계에 맞서는 주인공이 봉제인형이란 점에서 더 강하게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은 이 영화에서 느끼게 되는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9'과 '7', 그리고 '5
'

이 영화는 원래 10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즉 기본적인 뼈대와 아이디어는 원래대로 유지하면서 시간만 훨씬 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 영화의 약점으로 가끔 거론되는 스토리의 취약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분짜리 이야기를 길게 늘이려니 당연히 10분짜리 영상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각 캐릭터의 배경과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게 마련이겠죠. 단편에선 '5'와 '9'밖에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을 9명까지 전부 부활 시키고, 한 명 한 명마다 적당한 특성을 부여했습니다.
- 괴물기계에 맞서는 '9
'

그러면
어디 한 번 '1'에서 '9'까지의 봉제인형들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가장 나이가 많고, 모든 비밀을 알기에 두려워하며 피하려고만 하는, 처음에 만들어진 팀의 리더인 '1', 주인공인 '9'를 발견한 호기심 많은 학자형의 '2', 어린아이같이 귀여운 몸짓에 겁 많은, 기억의 천재 쌍둥이인 '3'과 '4', 남을 신뢰할 줄 아는 의리파인 '5', 자폐아 같은 느낌의 애매모호한 캐릭터인 '6', 멋진 여전사인 '7', 듬직하지만 미련한 전사인 '8', 지구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인 주인공인 '9', 이렇게 모두 9명의 봉제인형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썰렁한 영화제목인 <9>는 여기에서 왔고요.


이 영화는 마치
<매트릭스>와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분위기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장점은 스토리보다는 바로 애니메이션 그 자체에 있습니다.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 봉제인형들이나 괴물기계의 모습, 그리고 배경이 된 음울한 도시의 풍경 등, 마치 픽사의 <토이 스토리>를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감탄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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