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 육통리 회화나무 문화·유적

- 안강 육통리 회화나무


강읍 지역에 있는 육통마을은 신라 제42대 흥덕왕릉이 있는 곳입니다.

경주의 북쪽 끝에 있는 이 마을은 북쪽으로는 포항시 기계면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강동면 양동마을과 맞닿아 있으며, 남쪽으로는 안강리와 양월리와, 서쪽으로는 산대리와 접해 있습니다. 이 마을은 안강에서 기계로 가는 68번 지방도를 타고 기계방면으로 가다가 양월을 지나 서쪽으로 보이는 어래산 기슭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은 경주시청에서 21km쯤 되는, 차로는 30분 남짓 걸리는 곳입니다.

마을 이름이
특이하게도 '육통'이라고 붙여진 것은 이 마을이 원당(元堂), 능곡(陵谷), 거리동, 못밑, 존당(存堂), 황새마을 등 인근 여섯 마을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은 주로 벼농사와 단감, 포도 등 과수와 한우, 젖소를 기르는 농사일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안강의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왔으며, '고(물고)만 외워도 날이 샌다'라고 할 정도로 고가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들이 넓다는 이야기겠죠.
- 안강 육통리 회화나무


이 마을에 들어서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회화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습니다. 높이가 17m, 몸통 둘레는 6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이가 자그마치 450살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래된 나무에는 전하는 이야기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 나무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고려 공민왕 때 김영동이란 젊은이가 이 마을에 살았습니다. 당시 북으로는 홍건적이 남으로는 왜적이 침입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노략질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19세가 된 그는 출전할 결심을 하고 이 나무를 심은 다음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하며 "소자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이 나무를 자식으로 알고 잘 가꾸어 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부모는 이 나무를 아들의 유언대로 잘 가꾸었다고 합니다.

- 안강 육통리 회화나무


위와 같은 이야기대로라면 이 나무는 최소한 수령이 650년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안내문에는 수령이 450년이라고 되어 있으니 무려 200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대체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잠시 어리둥절하였습니다


마을에선 음력 정월 보름날에 이 나무 앞에 모여서 동제(洞祭)를 지내며 새해의 풍작과 행운을 빌고 있는데, 이때 제주(祭主)로는 마을에서 가장 정결한 사람을 뽑아서 제사를 올립니다.

이 회화나무 부근에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우물가에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 역시 꽤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이 또한 이 마을에 얽힌 세월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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