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대'에 서서 '이수삼산'을 그리워하다. 문화·유적

- 학성공원


성공원(鶴城公園)은 빛바랜 사진과도 같은 곳입니다. 더욱이 겨울날 찾은 그곳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과 스산한 바람만이 불어대는, 찾는 사람도 드문 적막하기만한 곳입니다.

하지만, 봄이 되어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에 단풍나무잎이 떨어져 쌓이면 겨울과는 다른 정취를 뿜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원의 허리를 빙 둘러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벚꽃이 필 때의 이곳 분위기는 겨울과는 달리 매우 멋이 있어 많은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 학성공원

학성공원은 울산시내 남쪽의 태화강 가에 있는 높이 약 50m의 학성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담한 동산형태로 이루어진 학성공원 정상에 서면 울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조차 쉽지 않지만 옛날에는 바닷물이 학성공원 밑까지 들어왔다 합니다.

학성(鶴城)은 신라 때에는 계변성(戒邊城)이라 불렀고, 후에 도산성(島山城)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을 학성이라 부르는 것은 신라말에 천신(天神)이 학을 타고 내려와 고을 사람들의 수록(壽綠)을 주장하였다 하여 신학성(神鶴城)이라 하다가 뒤에 학성(鶴城)이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학성공원은 1913년에 울산의 유지였던 추전 김홍조가 이곳의 개인 소유지 7,000여 평을 사들여, 흑송, 벚나무, 매화나무 등을 심고 공원으로 만들어 울산에 기증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학성공원이 되었습니다.

- 학성공원에 있는 김홍조공덕비

그래서 학성공원에는 오늘의 학성공원을 있게 한 김홍조를 기린 공덕비를 볼 수 있습니다.

김홍조는 구한말 울산 반구동 서원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그 후 경상좌도병마우후 등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의 사상에 경도되어 나라와 백성의 자주적 개혁과 근대화를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관직에서 물러나 실업인, 언론인, 금융인, 독립가로 활동하면서 인재양성과 애국계몽운동,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922년 세상을 떠나자 수년 뒤 울산 군민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공덕비 조성운동을 벌여 1929년 4월 12일에 이 공덕비를 세웠습니다. 비문의 내용은 박영효가 지었습니다.
- 울산왜성

학성공원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으로 우리 역사의 아픈 한 자락이 담긴 '울산왜성(蔚山倭城)'이 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성한 성입니다. 축성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도산성(島山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조선 후기에는 그 모습이 시루와 같다고 하여 증성(甑城)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울산왜성의 또 다른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울산학성(蔚山鶴城)'입니다.

조선 정조 때에 저술을 시작하여 고종 때에 간행된 <울산읍지>에 이 성은 신학성(神鶴城)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성을 학성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조선 후기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문화재 지정을 하면서도 이 성의 정식명칭을 울산학성으로 정하였고, 이곳에 공원이 조성될 때에도 학성공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 성(城)과는 별도로 고려 때에 축성된 학성이 따로 존재하였다고 보는 학설이 유력하여, 이런 견해에 따라 1997년에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때에는 정식명칭을 울산왜성으로 고쳤습니다.

- 울산왜성

울산왜성의 역사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충청도에서 진로가 가로막힌 왜군은, 1597년 9월 16일 한반도의 남해안 쪽으로 군사를 후퇴시켜 방어에 나섰습니다. 이때 왜군은 남해안 일대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을 저지하고자 여러 곳에 왜성을 만들었는데, 울산왜성 역시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울산왜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설계하였다고 전해지며,
축성이 시작된 것은 1597년 10월 또는 11월로 추측됩니다. 오타 가즈요시의 감독 아래, 모리 히데모토와 아사노 요시나가 등 주고쿠 지방의 다이묘들과 가토 기요마사의 병사 일부가 공사를 맡았습니다. 성벽의 자재 가운데 일부는 병영성과 울산읍성을 허물어 조달하였다고 하며, 공사가 마무리된 후인 같은 해 12월 4일에는 서생포왜성에 주둔하던 가토 기요마사가 주둔지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왜군의 방어거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울산왜성은 정유재란 당시 최전선이 되었으며, 두 차례에 걸친 울산성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울산왜성을 거점으로 삼은 가토 기요마사는 두 전투에서 모두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598년 11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철수하게 되자 왜군은 성에 불을 질렀고, 이로써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동안 조선 수군의 주둔지로 이용되었으며, 1624년부터 30년간은 군함 생산기지인 전선창(戰船廠)이 위치하기도 하였습니다.

- 요산대 비석

학성공원의 백미는 보물 제441호인 태화사터 십이지상부도입니다. 이 부도 외에도 학성공원에는 여러 개의 비(碑)들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정상부분의 동쪽 편 약간 낮은 곳에 자그마한 비석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름하여 '樂汕臺'란 비석입니다.

처음에는 이 글자를 '낙산대'로 읽어야 할지 '요산대'로 읽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가운데 글자는 보기 드문 한자로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란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물고기잡이를 즐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요산대'로 읽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비석이 서 있는 곳엔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 누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하여 이 자리에 세워졌는지 그 내력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 학성공원에서 내려다본 반구동 일대로, 멀리 보이는 강이 태화강입니다.

'요산대'에 대해 궁금하여 이것저것 찾다가 '이수삼산(二水三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수(二水)는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데,
태화강(太和江)과 여천강(呂川江)이나 태화강과 동천을 말합니다. 삼산(三山)은 산의 생김새가 세 봉우리를 이룬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옛날에 자라모양을 하였다고 하여 오산(鰲山)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 산은 마당들(삼산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산으로, 북으로는 태화강을 등지고, 남으로는 여천강의 화진(花津)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삼산에 벽파정(碧波亭)이란 정자가 있어 시인 묵객들이 찾았으나 지금은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중기 이전에는 삼산들 일대가 모두 바다였다고 하며, 학성공원도 바다 가운데로 쑥 내민 작은 반도였다고 합니다.
이때 삼산은 산봉우리가 나란히 모두 바다 가운데 솟아있는 섬이였으니 상상만해도 아름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강바닥 경사가 급해 토사의 유출이 심한 태화강에서 퇴적된 토사로 그 바다는 메워지고 산봉우리만 들판에 우뚝 남았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삼산들에 일제시대인 1931년에 비행장을 닦아 일본 후쿠오카행 정기여객항공편을 열기도 하였고, 태평양전쟁 때 군용비행장으로 확장하면서 삼산의 봉우리들을 모두 깎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비행장이 폐쇄되자 다시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옛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수삼산에서 삼산(三山)은 사라지고 태화강과 동천의 이수(二水)만 아직도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삼봉 주위의 바다는 육지가 되었고, 봉우리는 깎이어 비행장 활주로로, 다시 삼산들로 논이 되었다가, 지금은 현대식 버스터미널과 백화점, 종합병원, 금융기관 등 높이 솟은 빌딩들이 삼산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예전 이수삼산의 참된 풍치는 학성공원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경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성공원에 이수삼산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요산대가 있었으며, '요산대'란 비석이 서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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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팬저 2010/12/29 11:42 # 답글

    저도 이번 25일날 울산왜성이 있는 학성공원에 갔다왔습니다. ^^ 말씀하신 것 처럼 학성공원이 있었던 울산왜성의 경우 바다와 인접했을 것이고 삼면이 바다나 태화강과 인접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성의 축성의 경우 비슷하기때문입니다. ^^
  • 하늘사랑 2010/12/30 11:04 #

    역시 그렇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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