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보는 일은 수수께끼 풀기와 같다. 미술

Jan van EYCK
(b. before 1395, Maaseik, d. 1441, Bruges),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1434, Oil on oak, 82 x 60 cm, National Gallery, London
 
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냥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림 속에 많은 상징성을 담고 있는 경우라면 더 그렇겠죠. 그러면 아무런 지식 없이 그냥 보는 것과 미리 그 그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난 후에 보는 것과의 차이를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라는 그림을 통해 한 번 알아볼까요?

이 그림을 그냥 보면
특별히 이렇다 할 만한 특징이 없는, 플랑드르에 있는 한 부유한 집의 방에 서 있는 부부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렸다는 정도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한 것은 초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는 이전의 초상화와는 다른 몇 가지 큰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첫째, 이전의 초상화는 주로 반신상으로 그렸지만, 이 그림은 전신상으로 그렸습니다. 그것도 두 사람을 말입니다.

둘째, 이 그림의 배경을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이전의 초상화는
보통 배경을 아무것도 그리지 않거나 간혹 <모나리자>처럼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그린 것은 있으나, 이 그림처럼 방 안을 배경으로 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셋째, 이  두 사람은 그냥 방 안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등장인물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초상화란 그 시대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Jan van EYCK
,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c. 1435, Oil on oak, 29 x 20 cm, Staatliche Museen, Berlin

우선 이 그림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로 누구일까요?

그림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의 모델이 아르놀피니 부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베를린 국립 다렘 미술관에 있는 반 에이크가 그린 또 다른 그림인 <아르놀피니의 초상>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그림 속의 남자가
서로 똑같은 사람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의 인물인 조반니 아르놀피니(Giovanni Arnolfini)는 이탈리아 루카 출신의 상인입니다. 그는 장사 때문에 이탈리아를 떠나 플랑드르로 와서 줄곧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의 복장이 이탈리아풍이 아닌 완전히 플랑드르 식입니다. 이들 부부는
그들을 그린 반 에이크의 그림으로 보아선 화가와 친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 세부


얀 반 에이크는 오늘날의 프랑스 북동부와 네덜란드 남부 지방에 해당하는 곳인 플랑드르 지방에서 활동한 사실주의 화가로, 유채화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를 얀 반 에이크가 그렸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에서 볼록거울 위쪽에 "Johannes de eyck fiut hic. 1434(반 에이크 여기 있었노라. 1434)"라는 서명을 보아도 알 수 있죠. 이는 이 작품이 1434년에 그려졌다는 것과 반 에이크가 분명히 이 부부의 방에 왔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자, 이제 그림에서 볼록거울 부분을 자세히 한 번 살펴보시죠.

이 볼록거울에는 그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방 전체의 모습이 마치 미니어처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블록거울 특유의 왜곡된 형태로 왼쪽의 열려 있는 창과 오른쪽의 휘장이 달린 붉은 침대와 천장의 상들리에가 비치고 있으며, 가만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뒷모습 사이로 이 방의 입구가 비치고 있는데, 방문객 두 사람이 지금 막 문을 열고 들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문 입구에 선 두 사람이 보는 시점이 바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시점이기도 합니다. 즉, 이 그림은 문의 입구에서 본 아르놀피니 부부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작품을 대하면서 부부가 있는 방 안으로 불려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블록거울에는 이런 시각적인 효과 외에도 또 다른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볼록거울 둘레에 조각된 열 개의 원형 부조 장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는 최후의 만찬 후 예수가 간 곳인 감람산에서의 기도로부터 태형을 당하는 모습,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가는 모습,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 매장과 부활의 모습 등 예수의 수난 장면 열 가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래 과일을 그린 부분과도 서로 어느 정도 관련이 있습니다.

- 세부

활짝 열린 왼쪽 창 앞에는 간소한 탁자가 있고, 그 위에 사과로 보이는 과일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무심코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이 과일은 바로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는 금단의 나무 열매인 에덴동산의 사과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상징성을 그림 속에 부여한 걸까요?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동산의 사과를 먹는 순간 인간은 원죄를 짊어지도록 운명이 지워졌습니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그림 속의 부부는 결혼서약을 진행 중이며, 결혼은 인간의 운명과 결부된 중요한 일입니다. 결혼과 원죄, 이런 맥락에서 그림 속의 과일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세부

그림 속의 상들리에는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금속 광채를 아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상들리에를 자세히 살펴보면 촛불이 하나 켜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밖을 보면 분명 낮이고 방 안은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는데 왜 이렇게 촛불을 하나 켜놓은 걸까요?

이 촛불이 단순히 방 안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분명히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만 켜진 촛대는 중세 이래로 '혼례의 촛대'라고 불리며 결혼을 상징합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여인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살며시 잡으며 오른손을 가만히 들어 무언가를 서약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여인 또한 오른손을 남자에게 내맡긴 채 다소곳하게 서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미루어 볼 때도 이들은 결혼서약을 진행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의 볼록거울에 비친 초대받은 두 사람은 그냥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이 신성한 의식에 증인으로 입회하기 위해 초대된 것입니다.

이제 이 그림에 있는 '반 에이크 여기 있었노라.'의 의미가 좀 더 뚜렷해졌습니다. 이 말은 반 에이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결혼서약에 입회인으로 온 것이라는 의미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지금의 결혼사진처럼 이 결혼서약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물론 반 에이크는 이 결혼서약의 증인이고요.

- 세부


아르놀피니 부부의 발치에는 생기 있는 표정의 개 한 마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개 역시 그냥 그린 것이 아니겠죠. 개는 충절의 상징이므로 이 엄숙한 결혼서약과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상징물이기 때문에 이렇게 그려 넣은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이들 부부의 결혼서약을 상징하는 것이 몇몇 더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시죠.

결국 그림 속의 모든 것들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서약을 암암리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가는 자신과도 친한 이 두 사람의 결혼서약을 암시하려고 이처럼 여러 가지 상징물들을 그림 속에 교묘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화가의 이런 의도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이 그림을 보는 것은 결국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글의 일부는 다카시나 슈지가 지은 <명화를 보는 법>을 참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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