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미술

Sandro Botticelli
(ca.1445~1510), Primavera
c. 1482, Tempera on wood, 203 x 314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보티첼리의 <봄>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봄을 주제로 한 그림이 수도 없이 많이 그려졌지만, 이 그림만큼 은유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봄을 표현한 그림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이름을 왜 하필 '봄'이라 붙였는지 다소 의아스러웠습니다.

이 그림을 <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6세기에 바사리가 이 작품을 보고 "봄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쓴 데서 온 것이라고 하며, 원래는 보티첼리가 <비너스의 탄생>처럼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봄>이라는 이름은 이 그림을 나타내는 데 있어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이 그림이 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목에 꽃목걸이를 두르고 몸 전체가 꽃무늬로 덮인 꽃의 여신 플로라가 넘치도록 가득 안은 꽃을 흩뿌리며 조용히 걷는 모습에서 봄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으나, 이것만으로 이 그림에 <봄>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뭔가 좀 부족해 보입니다.

우선 이 그림을 언뜻 보면 마치 연극 무대 위를 보는 듯합니다. 배경은 금색으로 빛나는 오렌지가 잔뜩 달린 어두컴컴한 숲으로, 가운데 있는 비너스의 머리 위에서 춤추는 큐피드까지 모두 아홉 명이 거의 한 줄로 나란하게 평면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 세부

그러면 이제 플로라 뒤에 있는 님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눈에 알 수 있듯이 이 님프는 바로 앞에 있는 플로라와 모든 점에서 대조적입니다.
이 님프는 클로리스라고 불리는 대지의 님프입니다. 플로라의 옷은 온갖 아름다운 꽃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이 님프의 옷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습니다. 이 님프는 뒤를 돌아보며 뒤쫓는 사람의 손에서 도망치려 하는 불안정한 모습이지만 플로라는 느긋하고 침착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상반된 모습의 플로라와 클로리스가 사실은 같은 인물입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속의 봄의 정경을 그린 곳에서 "나는 예전에 클로리스였는데 지금은 플로라라고 불린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클로리스가
어떻게 플로라로 변한 걸까요?
- 세부


그림에서 볼을 잔뜩 부풀린 채 대지의 님프 클로리스를 쫓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호색한 서풍 제피로스입니다. 이는 화면 오른쪽 끝에 그려진 나무만이 크게 휘어져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클로리스는 어떻게든 제피로스에게서 달아나려 하지만 끝내 붙잡히고 맙니다. 제피로스의 손이 클로리스의 몸에 닿은 순간 그녀의 입에서 봄꽃이 흘러나와 팔랑팔랑 떨어집니다. 이렇게 흰옷을 입은 클로리스는 화사한 꽃의 여신 플로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림 왼쪽 끝에 보이는 신의 사자(使者) 머큐리는 지팡이로 정원을 침범하는 비구름을 막고 있습니다. 싱그러운 꽃들이 활짝 피어나도록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도록 말입니다.

오비디우스의 시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클로리스는 대지의 님프이며 서풍은 봄바람입니다. 겨울 동안 대지는 단조로운 색으로 덮여 있었으나, 봄바람이 불어오면 새싹이 돋고 고운 봄꽃이 피어납니다. 클로리스가 제피로스에게 붙잡혀 아름다운 꽃의 여신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바로 자연 속의 봄이 오는 광경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대지의 님프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는 과정은 자연에서 봄이 왔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인생의 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큐피드와 프시케의 이야기에서처럼 서풍 제피로스 또한 사랑의 바람입니다. 봄바람이 불면 대지에서 꽃이 피듯 여성은
사랑을 알게 됨으로써 순결한 소녀에서 새롭게 여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 세부


이러한 사랑의 변신을 한층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화면 왼쪽에 그려진
세 명의 미의 여신이 추는 윤무(輪舞)입니다.

얇은 옷을 하늘하늘 휘날리며 서로 손을 잡고 춤추는 이 세 여신의 모습은 르네상스가 낳은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콤한 봄날의 꿈과도 같은 이 세 여신에게도 주어진 역할이 각각 있습니다. 즉, 이 세 여신은 '애욕'과 '순결'과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세 여신 가운데 왼쪽 끝에 있는 여신이 애욕의 여신이며, 가운데에 있는 여신이 순결의 여신이고, 오른쪽 끝의 여신이 아름다움의 여신입니다. 애욕의 여신과 순결의 여신은 서로 맞부딪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대립은 아름다움의 여신에 의해 화해되고 통일됩니다. 이는 소박하고 맑은 순결이 애욕과 접촉하여 마침내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눈을 안대로 가린 큐피드의 불화살이 미의 세 여신 가운데
정확하게 순결의 여신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 세부


이처럼 순결에 사랑이 더하면서
아름다움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인 비너스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가운데에서 한 단 더 높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의 어두운 숲도 비너스 주위에만 뚫려서 천연의 아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중세 말기 기독교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를 아치 아래에 그리는 것과도 닮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보티첼리의 <봄>은 사계절 중 봄과 같은 사랑과 아름다움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글의 일부는 다카시나 슈지가 지은 <명화를 보는 법>을 참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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