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덕전과 알영정 문화·유적

- 알영정

라는 천 년의 세월, 말 그대로 천년왕국을 이어온 나라입니다. 그런 신라이니만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 대한 신비스러운 이야기 하나쯤 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박혁거세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물론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유사>를 통해 좀 더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습니다.


기원전 69년 여섯 촌장이 아들들을 데리고 알천
(閼川)의 언덕 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뽑기 위한 논의를 하던 중 남쪽의 양산(楊山) 아래 있는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서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백마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들이 그곳에 가보니 박과 같이 생긴 자줏빛 알 한 개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알을 깨어 보니 잘 생긴 사내아기가 나왔습니다. 모두 놀라 이상하게 여겨 그 아이를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서 춤을 췄으며, 이내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졌습니다. 이에 그 아이를 혁거세(赫居世)라고 이름하니, 이는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박과 같은 알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박씨라 하였습니다. 그가 곧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입니다.
- 알영정 비각

같은 날 사량리(沙梁里)에 있는 알영정(閼英井)이라는 우물에서는 계룡(鷄龍)이 나타나서 왼쪽 갈비에서 어린 계집애를 낳았습니다. 얼굴과 모습은 매우 고왔으나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았습니다. 이에 월성(月城)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 일 때문에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고 하였고, 이 아이의 이름을 나온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閼英)이라 하였습니다.

이 두 아이를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지금의 창림사(昌林寺)터에 궁실을 짓고 모셔다가 길렀습니다. 이들이 13세가 된 기원전 57년에 남자 아이는 왕이 되었고 여자 아이는 왕후가 되었습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던 어느 날(서기 4년 3월) 왕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7일 뒤에 그 죽은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습니다. 그러더니 왕후도 역시 왕을 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라 사람들은 이들을 합해서 장사를 지내려 했으나 큰 뱀이 나타나더니 쫓아다니면서 이를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오체(五體)를 각각 장사를 지내어 오릉(五陵)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능의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했습니다.

<삼국유사>에 박혁거세가 죽은 후 담엄사 북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담엄사(曇嚴寺)는
지금의 오릉 주차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담암사(曇巖寺)는 담엄사와 같은 절로 보입니다.

- 영숭문

숭덕전(崇德殿)은 신라 시조왕인 박혁거세를 봉사(奉祀)하기 위한 제전(祭殿)으로, 오릉 남측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외삼문을 중심으로 건물들을 에워싼 일곽의 담장 밖에 다시 담장을 둘러 동쪽과 남쪽에 삼문을 세웠습니다. 남쪽의 삼문을 들어서면 홍살문이 나타나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외삼문인 영숭문(永崇門)이 있습니다.

영숭문을 들어서면 내삼문인 숙경문(肅敬門)이 있고, 숙경문을 들어서면 숭덕전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동일 축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숭덕전의 우측에는 향축실(香祝室)과 전사청(典祀廳)을 두었고, 숙경문과 영숭문 사이에는 좌·우로 상현재(象賢齋)와 동재(東齋)를 두었습니다.

- 숭성각


영숭문을 들어가기 전 왼쪽에는 시조왕의 신도비를 안치한 숭성각(崇聖閣)이 있습니다. 그리고 숭성각의 오른쪽 담장 밖에는 중수비각이 서 있습니다.
- 숭덕전


숭덕전은 1429년(세종 11년)에 건립되었으나, 1592년(선조 25년)에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1601년(선조 34년)에 관찰사 이시발(李時發)이, 1618년(광해군 10년)에는 관찰사 박경신(朴慶新)이 각각 중건하였고, 1704년(숙종 30년)에는 경주부윤 여필용(呂必容)이 중수하였습니다.

1723년(경종 3년)에는 묘(廟)를 고쳐 숭덕전이라는 편액을 달았으며, 현재의 모습은 1735년(영조 11년)에 중건된 것이라고 합니다.
- 알영정 비각과 알영정

숭덕전 뒤편에는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비(新羅始祖王妃誕降遺址碑)' 비각과 알영부인(閼英夫人)이 태어났다는 '알영정(閼英井)'이 있습니다.

알영정은 기다란 석재로 입구를 막아 놓았으나, 그 틈 사이로 들여다 보면 아직도 우물 속에는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알영부인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 우물의 나이는 이천 년이 더 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아직도 우물에 물이 고여 있는 걸 보니 이런 이야기가 쉽게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덧글

  • 라디오 2010/02/11 12:51 # 답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정사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정사와 야사는 구분될 수가 없어요.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反하는 사서입니다. 반동분자가 쓴 사서이거든요.
    내용 곳곳에 삼국사기와는 다른 사실이 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 라디오 2010/02/11 12:56 # 답글

    족보책을 연구해야 해요.
    족보책은 일종의 사서이거든요.

    신라 기년 조작 행위와 알까기 신화로 숨겨 놓은 신라 건국의 비밀을 언제 감추었냐에 대해 추적을 해 봐야 합니다.

    가능한한 가까이 가 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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