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함이 종오정만 같아라. 문화·유적

- 종오정


주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곳입니다.

모처럼의 나들이 장소로 경주만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곳도 드물 것입니다. 보문단지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위락지가 있는가 하면, 무장사터나 흥덕왕릉과 같이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한번 찾게 되면 쉽게 잊히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경주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는 보문단지와 대릉원 주변을 꼽을 수 있는데, 봄날 벚꽃이나 유채꽃이 필 무렵이면 이곳은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심한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보문단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사시사철 주말만 되면 많은 사람들로 언제나 붐빕니다.

이런 보문단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모습의 경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종오정도 그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종오정


종오정(從吾亭)경주에서도 잘 찾지 않는 외곽인 손곡산(蓀谷山) 기슭에 있습니다. 종오정 또한 비록 마을에서 떨어진 깊은 곳에 있지만, 앞의 공간이 넓게 트여 있어 동네 어디서나 잘 보입니다. 이곳에서는 자연과 함께 한 당시 선비들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종오정은 조선 영조 때 학자인 문효공
(文孝公) 최치덕(崔致德)의 유적지입니다. 최치덕이 1745년(영조 21년)에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려고 일성재(日省齋)를 짓고 머무를 때, 학문을 배우려고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구산서사(龜山書社)와 함께 세운 곳입니다.

종오정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여덟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면 지붕 평면이 '工'자가 되는 것이 특이합니다.

- 종오정 연못


주변 경치와 어울린 종오정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도 이곳은 비교적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습니다.

연못의 앞면과 좌우로는 향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특히 7월과 8월이 되어 연못 주위에 붉게 핀 배롱나무 꽃과 함께 연못을 가득히 메운 연꽃이 만발하면 그 모습이 일품이라고 하는데, 지금 겨울날의 모습과는 또 다를 것입니다.
- 귀산서사


귀산서사(龜山書社)는 원래 모고암(慕古菴) 또는 손곡서당이라 불리다가 1928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최치덕의 자는 희옹(喜翁)으로, 숙종 25년(1699년)에 태어나 영조 46년(1770년) 72세로 죽기까지 평생을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여 7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냈습니다. 학문 연구에도 몰두하여 <역대시도통인(歷代詩道統引)>, <심경집(心經集)> 등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죽은 지 3년 후에 이러한 업적이 조정에 알려져 호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 종오정 내에 있는 석재 부재들


종오정에는 절터에서 옮겨다 놓은 석재 부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불상의 대좌로 보이는 석재가 귀산서사의 주춧돌로 사용되었고, 종오정의 기단에서도 석탑의 기단석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연못가에서 석등 받침돌과 석조를 볼 수 있습니다
.
- 종오정 향나무


종오정 입구에는 늠름한 모습의 향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끕니다. 나무의 나이가 300년이나 되었다고 하니, 종오정이 세워졌을 때 같이 이곳에 심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이 향나무는 종오정과 함께 지내온 산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종오정은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을 떨쳐 버리고 자연과 함께 조용하게 머물며 잠시나마 시간을 잊고 쉬었다 가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덧글

  • 팬저 2010/03/10 10:20 # 답글

    증오정의 초석이 일반적인 막돌이 아니고 잘 다듬어 놓은 것이 인상에 남네요.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으면서 자연을 담아오는 방법을 아는 것 같습니다. 경주의 증오정 말고도 전국에 여러개의 연못을 낀 정자가 많은 것을 보면 말이죠. ^^ 잘보았습니다.
  • 하늘사랑 2010/03/10 10:33 #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으면서 자연을 담아오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는 팬저님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이는 현재 우리들이 배워야할 소중한 지혜라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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