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도 없는 석빙고에 찬 바람만 분다. 문화·유적

- 청도 석빙고


즈음이야 집집이 없는 집이 없을 만큼 냉장고는 생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느 때고 얼음이 필요하면 냉장고에서 꺼내어 쓰면 되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냉장고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만 해도 여름철에 얼음이 필요하면 가까운 얼음가게에 가서 사다가 썼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음을 새끼줄에 매달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조금씩 녹아내리는 얼음에 종종걸음을 치곤 했습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로 한 번 되돌아가 볼까요? 당시에도 여름철에 얼음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얼음을 공급하였던 곳이 바로 석빙고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요즈음의 대형 냉동고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 청도 석빙고


그러면, 조선시대에 여름철에 얼음은 어디에 필요했을까요? 흔히 생각하기 쉬운, 음식을 차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외에 과연 어디에 필요했을까요?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장례의식 때입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조선시대는 정신적으로 유교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장례절차는 그 어떤 의식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요즈음도 삼일장이다 오일장이다 하여 며칠에 걸쳐 장례를 치르지만 모르긴 해도 당시에는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지체가 높은 사람이 죽은 경우는 장례날짜가 더 길어졌겠지요.

그런데 장례식은 사시사철 어느 때고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여름철에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며칠에 걸쳐 장례식을 치뤄야 하는데 푹푹 찌는 여름철엔 시신이 빠르게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시신을 차게 보관해야만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얼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당시엔 지금과 같은 해열제가 없었던 시절이니 고열의 환자가 생겼을 때 열을 내리기 위한 응급치료로
얼음이 필요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석빙고에 보관된 얼음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얼음이 필요한 곳은 많았으니 얼음은 신분에 따라 차등배분을 하였습니다.
- 청도 석빙고


이처럼 얼음은 조선시대에도 특히 여름철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여러 곳에 석빙고를 지어 운영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없어진 곳이 많아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일곱 곳에 불과합니다. 이곳 청도를 비롯하여 경주, 영산, 창녕, 현풍, 안동, 그리고 황해도 해주, 이렇게 일곱 곳입니다.

현재 남한에는 있는 석빙고 가운데 축조연대가 가장 이른 것이 바로 청도 석빙고이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청도 석빙고는 다른 곳의 석빙고와는 달리 봉토가 모두 유실되었고 홍예보 사이를 덮었던 판석들도 대부분 달아나, 지상으로는 홍예보 네 줄만이 초승달처럼 솟아올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이렇게 골격이 모두 드러난 덕분에 석빙고의 내부 구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
돌계단에 남은 문지도리 홈 자국

청도 석빙고 입구의 돌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석빙고 바닥과 지상의 중간 지점에 문을 내었던 듯 문지도리 홈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석빙고 내부 모습


청도 석빙고의 형태는 동서로 긴 장방형으로 길이 15m, 폭 5m, 높이 4.4m의 규모이며, 서쪽으로 출입구가 나 있습니다. 그리고 출입구와 반대편 낮은 지대로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런 배치는 다른 곳의 석빙고와 차이가 없습니다. 석빙고의 바닥은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잘 빠지도록 경사가 져 있고, 이 바닥 아래로 스며들어 배수가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청도 석빙고를 찾은 날, 이미 경칩도 지났건만 꽃샘추위로 여전히 바깥 기온은 쌀쌀하기만 하였습니다. 게다가 이곳 석빙고에는 찬 바람까지 쌩쌩 부니 그야말로 얼음창고라는 이름이 실감이 났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벌벌 떨고 나니 석빙고를 찾는 계절은 역시 더운 여름철이 제격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덧글

  • 현암 2010/03/14 04:16 # 답글

    전 가끔 이러한 유적들을 보면 왜 활용할 수 있는걸 활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솔직히 현재 다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 하늘사랑 2010/03/14 16:12 #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글쎄요,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커 보이질 않네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