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천정 앞 너럭바위만 보아도 저절로 취하네. 문화·유적

- 작천정


월산에서 흘러내려 등억리를 지나 언양읍 앞으로 흐르는 내를 작괘천(酌掛川)이라 부릅니다. '작괘'란 '술 따른 잔을 걸어놓다.'라는 의미로, 냇가 바위에 웅덩이처럼 파인 모습이 마치 술잔에 술을 따른 것과 같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 이름으로 들어도 멋들어진
냇가에 그림과 같은 정자 하나 없을 리가 없습니다. 이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작괘천에서도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정자가 하나가 있으니, 바로 작천정(酌川亭)입니다.
- 작천정


작천정은 조선 세종 때 세워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후인 고종 때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1895년(고종 32년) 봄 언양 현감으로 부임한 정긍조(鄭肯朝)가 언양 지역의 여러 선비들을 이 작괘천에 초대하여 시회(詩會)를 열었습니다. 시회가 끝난 후 정현감은 이 자리에 모인 선비들과 함께 굴산시사(窟山詩社)를 결성하고 성금을 모아 정자를 건립하자고 제의하니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이것이 작천정을 건립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언양현이 언양군으로 승격되었고, 2대 군수인 최시명(崔時鳴)이 1900년에 작천정 건축공사를 시작하여 1901년 이임할 때까지 내부 장식만 남기고 건물을 완성했으며, 이듬해 7월 상순에 낙성식을 가졌습니다.
- '수석정' 현판

작천정 입구 처마에는 '
수석정(漱石亭)'이라 쓰인 작은 현판이 하나 걸려 있습니다. 이 수석정은 작천정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수석(漱石)'이란 말은 중국 진(晋)나라 손초(孫楚)의 '수석침류(漱石枕流)'에서 나온 것으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가 침석수류(枕石漱流)라고 할 것을 수석침류(漱石枕流)라고 잘못 말하였는데, '수석(漱石)'은 '이를 닦기(튼튼히 하기) 위함'이고, '침류(枕流)'는 '귀를 씻기 위함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이후 '수석침류'는 '오기(傲氣)가 세다.'라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 작괘천


작괘천 계곡에는 닳고 닳은 너럭바위 위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미끄러지듯 흐릅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자연의 오묘한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너럭바위 곳곳에는 아주 매끄러운 웅덩이들이 파여 있고, 맑은 물이 이곳을 거쳐 흐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옛 사람들이
술잔에 술을 따르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 작괘천


작천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淸流蟬聲夏閑來    맑게 흐르는 물과 매미 소리에 여름이 한가히 오고,
청류선성하한래
酌水凉風送暑炎    작천수와 선들바람은 심한 더위를 보내주네.
작수량풍송서염
激流盡磨期億年    격류에 갈리고 갈리기를 몇억 년이나 되었는가?
격류진마기억년
巨岩河床萬樣器    큰 바위로 된 강바닥이 만 가지 그릇 모양으로 되었구나.
거암하상만양기

이 멋진 시구(詩句)처럼 풍류를 즐길 줄 알았던 옛사람들은 작천정에 앉아 모든 세상사를 털어내어 작괘천 물 위로 띄워 보냈을 것입니다.

덧글

  • 현암 2010/03/24 22:57 # 답글

    오오 경치가 참 아름답네요. 뭐랄까 매일 이렇게 포스팅 하시는거 보면 저런 곳 언제 다녀오셨는지...;;
  • 하늘사랑 2010/03/25 10:27 #

    즐겁게 봐주니 기분이 좋네요.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찜을 해 놓았다가 일요일 틈이 나면 나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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