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문화·유적

-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주(蔚州)라는 이름은 고려시대부터 이렇게 불리웠으며, 학성(鶴城)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울산광역시에서도 변두리에 속한 땅이 되었지만, 이곳은 울산에 못지않은 역사를 지닌 고장입니다. 이는 울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언양에 조선시대에 만든 읍성이 아직껏 남아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울주군의 두서면에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아름드리 은행나무 한 그루가 들판 가운데 서 있어, 아는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려고 일부러 이곳을 찾습니다. 이 은행나무를 구량리 은행나무, 또는 두서면 은행나무라고 부릅니다. 이곳이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이다 보니 이렇게들 부릅니다.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있습니다.
- 이제 나뭇잎이 움트기 시작한 구량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550년이나 된 것으로 전하는 데,
조선 초기 죽은(竹隱) 이지대(李之帶)가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지대라는 분은 고려 후기의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4대손입니다.
1394년(조선 태조 3년) 경상도 수군만호(水軍萬戶)로 있으면서 왜구가 탄 배를 붙잡은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았으며, 그 후 벼슬이 높아져 한성판윤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는 1452년(단종 즉위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키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 서울에서 가져와 연못가에 심었던 것이 바로 이 은행나무라고 전합니다.
-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이 나무의 높이는 22m, 가슴 높이의 둘레가 12m에 이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나무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나무는 답답하지 않게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들판 가운데 서 있어,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4월의 주변 풍경과 함께 어울려 보기가 좋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오랜 세월 탓에 나무 밑부분 한쪽이 썩어 보수를 하였으며,
또한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커다란 괴임대를 받쳐 놓은 모습이 마치 목발을 짚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이 나무처럼 500년 넘게 한결같이 지내 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숱한 재해를 견디며 이렇게 오늘까지 버텨온 것은 아마도 마을 사람들의 돌봄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나무를 훼손하면 해를 입는다거나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들이 이 나무에다 정성껏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하는 것을 보면,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얼마나 신성하게 여겨져 왔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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