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쓴 조선시대 유서(諭書) 문화·유적

선조 국문 교서
, 1593년, 75.0 x 48.8cm, 보물 제951호, 개인소장(권이도 소장)

선시대 유서(諭書)는 임금이 군사권을 가진 관원에게 내리는 명령서로서, 교서
(敎書)처럼 임금이 내린 명령서의 하나입니다. 유서는 교서와 마찬가지로 한문으로 쓴 게 대부분이지만 아주 드물게는 한글로 쓴 것도 있습니다. '선조 국문 교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선조 국문 교서'는 1593년 9월 선조가 포로로 잡혀 왜적에게 협조하고 있는 백성들을 회유시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내린 유서(諭書)입니다. 흔히 '선조 국문 교서'로 알려져 있으나, '유서지보(諭書之寶)'라는 도장이 세 곳에 찍혀 있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조 국문 유서'라 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1593년(선조 26년) 9월에 선조는 해주에 머물고 있으면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명나라 군사의 도움을 받아 평양과 서울을 수복하였으나 왜군은 아직 부산, 동래 등지에 머물며 항거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에 선조는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왜적을 칠 방도를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이러한 유서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 유서와 관련된 기록이 선조실록에도 보입니다. 즉 선조 26년 9월 9일 기사에 따르면 비망기를 내려 이르기를 "부산 등지에 있는 우리 백성으로서 왜적에게 투항하여 들어간 자가 매우 많은데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면 화를 당할까 의심하는 자가 어찌 없겠는가. 별도로 방문(榜文)을 만들어 분명하게 알리되 나오면 죽음을 면해 줄 뿐만이 아니라 평생토록 부역을 면제해 줄 것이며 혹 포상으로 벼슬도 줄 수 있다는 등의 일을 참작해서 의논하여 조처하도록 비변사에 이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명에 따라 한글로 된 이 유서가 내려졌습니다.


이에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장수 권탁(1544∼1593)은 이 유서가 내려지자 적진에 몰래 들어가 왜적 수십 명을 죽이고 우리 백성 100여 명을 구출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권탁은 이때 입은 상처로 인해 사망하였으며, 1722년(경종 2년)에 통정대부에 추증되었습니다. 이 유서는 권탁의 후손 집에서 보관되어 오다 현재는 부산시립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쓰인 점에서 국어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보물 제95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선조 국문 교서'에 쓰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다.

임금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처음에 왜적에게 포로가 되어서 (왜적을) 이끌어 다니는 것은 너희의 본마음이 아니라 (도망쳐) 나오다가 왜적에게 붙들려 죽지 않을까 여기기도 하며, 도리어 의심하기를 왜적에게 속해 있었으므로 나라에서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하여 이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너희가 그런 의심을 먹지 말고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너희에게 각별히 죄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중에 왜적을 잡아 나오거나 왜적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아 나오거나 포로가 된 사람을 많이 데리고 나오거나 해서 어떠하든 공이 있으면 양민과 천민을 막론하고 벼슬도 시킬 것이니 너희는 생심이나 전에 먹고 있던 마음을 먹지 말고 빨리 나와라. 이 뜻을 각처의 장수에게 다 알렸으니 생심이나 의심하지 말고 모두 나와라. 너희들이 설마 다 어버이나 처자가 없는 사람이겠느냐? 너희가 살던 곳에 돌아와 예전처럼 살면 좋지 않겠느냐? 이제 곧 나오지 않으면 왜적에게 죽기도 할 것이고 나라에서 평정한 후에는 너희들인들 뉘우치지 않겠느냐? 하물며 명나라 군사가 황해도와 평안도에 가득히 있고 경상도와 전라도에도 가득하여 왜적들이 곧 급히 저희의 땅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조만간 (조선군과 명군이) 합병하여 부산과 동래에 있는 왜적들을 다 공격할 뿐 아니라 중국 배와 우리나라 배를 합하여 바로 왜국에 들어가 다 토벌할 것이니 그때면 너희도 휩쓸려 죽을 것이니 너희들이 서로 (이런 이야기를) 전하여 그전에 빨리 나와라."

만력 21년(1593년) 구월 일

덧글

  • 현암 2010/06/10 17:05 # 답글

    솔직히 한글로 된 유서는 처음 보는군요. 그전에도 몇번 들어본 적은 있으나 선조가 쓴 줄은 몰랐습니다. 뭐랄까 은근히 의외군요....
  • 숨결 2012/06/18 13:09 # 삭제 답글

    너무 좋은 자료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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