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 정여창 묘소 문화·유적

- 정여창 묘소


안사터에 있는 '승안산 하동 정씨 묘지공원'에는 하동정씨의 묘소가 한데 모여 있습니다. 이곳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일두 정여창의 묘소가 있습니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은 조선 성리학에 있어 점필재 김종직으로부터 한훤당 김굉필과 함께 학문을 배워 포은 정몽주의 학통을 계승하였습니다. 이로써 나중에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등과 같은 성리학자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종 21년(149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檢閱), 세자시강원 설서(設書, 세자의 스승), 안음현감(安陰縣監) 등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다 연산군 4년(1498년)에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좌되어 함경도 종성(鐘城)으로 유배되어 1504년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중종대에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610년(광해군 10년)에는 김광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과 함께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사람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었습니다.
- 정여창
묘소

그의 성리학은 정몽주,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조선 전기 사림파의 주자학을 계승하였습니다.

그는 인(仁)을 보편적 가치의 정점으로 삼아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집권세력이었던 훈구파를 공격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화에 연루되어 죽음을 맞았습니다.

- 문인석


조선시대 사림을 대표하는 그의 묘소에는 온화한 그의 성품을 반영하듯 문인석 또한 순한 표정을 지은 채 양쪽으로 하나씩 서 있습니다.
- 신도비


또한 정여창 묘 앞에는 당당한 모습의 신도비가 서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 신도비는
1689년 3월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려 하자 자결을 시도한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이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두전(頭篆, 비석 몸체의 머리 부분에 돌려 가며 쓴 전자) 및 비문 전체의 글씨는 이조판서를 거쳐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른 서곡(西谷) 이정영(李正英, 1616~1686)이 썼습니다.

이 비석의 두전은 '증 우의정 문헌공 일두 정선생 신도비명(贈右議政文獻公一蠹鄭先生神道碑銘)'이라 되어 있고, 비액제(碑額題)는 '유명 조선국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겸 영경연감 춘추관 사시 문헌공 일두 정선생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諡文獻公一蠹鄭先生神道碑銘幷序)'로 되어 있습니다.
- 정경부인 완산이씨
묘소

정여창 묘소 바로 위에는 부인인 정경부인(貞敬夫人) 완산이씨 묘소가 있습니다. 부인의 묘소를
위쪽에 썼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정여창의 묘소와 여러모로 많이 닮았습니다.

덧글

  • 2016/06/30 15: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6/30 16: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12 16: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12 16: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16 08: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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