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바람 부는 광풍루 문화·유적

- 광풍루


금 안의(安義)의 모습에선 예전에 함양이나 거창 못지않은 고을이었음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금천(錦川) 가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2층 누각을 보면 조금은 생각을 달리하게 됩니다.

비록 누각 양쪽으로는 바싹 붙어 도로가 나 있어 흡사 포위된 장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건물 자체만 놓고 보면 범상치 않은 건물임을 금방 알아채게 됩니다. 이 건물은 광풍루(光風樓)라는 누각입니다.
- 현판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2층 누각 처마에는 각기 다른 글씨체로 광풍루라고 쓴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옛말에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황정견(黃庭堅, 1045~1105년)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표하면서,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춘릉(春陵)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 속이 담박 솔직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라고 하였습니다.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을 뜻하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은 이런 연유로 "깨끗하게 가슴 속이 맑고 고결한 것, 또는 그런 사람"을 비유하여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건물에 붙은 '광풍루'란 이름에도 세상이 잘 다스려지길 바라는 옛사람들의 깊은 뜻이 담겨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광풍루


광풍루는 앞면 5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입니다.

이 누각은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 당시 이안(利安, 안의 옛 이름) 현감이던 전우(全遇)가 건립하였다고 하며, 그 당시의 이름은 선화루(宣化樓)였습니다. 그 후 세종 7년(1425년)에 김홍의(金洪毅)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으며, 성종 25년(1494년)에 안의 현감이던 정여창(鄭汝昌)이 중건하면서 이름을 광풍루(光風樓)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불탔고,
그것을 선조 34년(1601년)에 복원하였으며, 숙종 9년(1683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많이 퇴락한 것을 1980년에 정비하였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