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독동의 반송 문화·유적

- 선산 독동의 반송


산(善山)은 1995년 1월 구미시로 통합되면서 지금은 구미시에 속해 있지만 그 역사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곳은 신라 진평왕 36년(614년)에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면서 '일선'이라는 이름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경덕왕 때 숭선군(嵩善郡)으로 고쳤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성종 14년(995년에 선주(善州)로 고쳤고, 조선 태종 때에 지금 남아 있는 지명인 선산(善山)으로 고치게 되었습니다. 선산 주민들은 아직도 '일선'이나 '숭선' 또는 '선주'라는 말을 쓰고 있으니 그 역사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해동불교의 성지인 도리사가 있어 불교문화뿐만 아니라, 길재를 연원으로 하는 이른바 영남학파의 한 축을 담당한 선산 사림의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중환은 그의 책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라고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 선산 독동의 반송


이런 선산에 어울릴 법한 귀품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선산 독동리에 있는 반송으로, 이곳 마을 이름을 따서 선산 독동의 반송(善山 禿洞의 盤松)이라 부릅니다.
그 나이가 400년으로 추정될 만큼 오래되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반송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독동리 반송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떨어진 길가에 있지만, 그 자태는 매우 우아합니다. 안강 노씨가 이곳 마을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자라던 나무라고 전해 오고는 있지만, 자세한 내력은 알지 못합니다.
- 독동리 반송의 나뭇가지


위를 향해 사방으로 곧게 뻗은 나뭇가지는 하늘을 가릴 만큼 지금도 푸름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이처럼 나무 밑에서 쳐다보는 모습 또한 그에 못지않게 멋있습니다.
- 나무 밑둥지

독동리 반송의 크기는 높이가 13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19.2m, 남북으로 20.2m이며, 가슴높이 둘레가 7.3m입니다.

지상 40cm 높이에서 가지가 남북 2개로 갈라졌습니다. 남쪽 것은 다시 80cm 높이에서 3개로 갈라졌으며, 북쪽 것은 60cm 높이에서 5개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산 모양으로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 나뭇가지 아래로 보이는 주위 모습


반송(盤松)은 사람들이 일부러 육종한 것이 아니라 산에서 흔히 자라는 소나무들 가운데 한 종류입니다.

잎이나 열매, 꽃 모양 등은 다른 소나무와 같지만, 줄기가 하나인 다른 소나무와는 달리 반송밑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특징으로 반송은 전체적인 모습이 마치 활짝 편 우산처럼 보일 만큼 균형감이 있습니다. 따라서 반송을 흔히 정원수로 심기도 합니다.

이처럼 반송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보니 그 가운데 크고 오래된 경우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합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송으로는 제357호인 선산 독동의 반송 외에도 제291호인 무주 설천면의 반송과 제293호인 상주 화서면의 이무기 반송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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