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의 도타운 정이 서려 있는 모고헌 문화·유적

- 영천 모고헌


천시 화북면 횡계리에 있는 모고헌(慕古軒)은 횡계서당(橫溪書堂) 앞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입니다.

이 건물은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인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 1667~1732)이 숙종 27년(1701년)에 자신이 출생한 영천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홍류담 위에 지었던 것입니다. 그와 그의 형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 1664~1730)은 근처에 있는 옥간정(玉磵亭)과 이곳을 오가며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고 합니다.

이름을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영조 6년(1730년)에 문인들이 개축하면서 모고헌이라고 바꾸었습니다.
- 모고헌


건물은 정남향을 하고 있습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네 면에 툇간을 둘린 정사각형의 평면을 하고 있는 독특한 건물입니다. 앞쪽에서 보면 완전한 중층 누각이나 뒤쪽에서 보면 단층 건물로 보이는 형태입니다.
앞쪽으로 흐르는 계곡과 어울려 한껏 멋을 느끼게 합니다.
- 모고헌 내부


모고헌 내부의 방은 네 면이 툇간으로 둘러싸인 한 칸짜리 방입니다. 한 칸이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말하니, 그야말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서도 옛 선비들의 절제와 소박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모고헌 현판들


모고헌 내부에는 '모고헌(慕古軒)'과 '태고와(太古窩)'라고 쓴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태고와(太古窩)에서
'와(窩)'움집을 말하니, 처음 세웠을 때의 건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소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고헌(慕古軒)에서 헌(軒)'은 추녀집을 말합니다. '와(窩)'에서 '헌(軒)'으로 변한 이름에서도 건물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향나무

모고헌 바로 뒤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수령이 30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향나무는 정만양이 어느 스님으로부터 얻어 심었다고 합니다. 그의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때로 절의 누대에 이르니 승려 말이 부드럽고,   時到寺樓僧語軟
매번 찻사발 기울이니 병든 몸에 마땅하네.       每傾茶碗病軀宜

한가한 틈을 타 절을 찾아 가끔 담소했던 시구(詩句) 속의 스님이 향나무를 준 바로 그 스님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횡계서당


정만양과 정규양 이들 형제는 우주의 본체를 태허(太虛)로 주장한 중국의 장재(張載, 1020~1077)의 학설을 신봉했습니다. 그래서 도화동(桃花洞)이던 이곳 지명을 장재의 호인 횡거(橫渠)를 따서 횡계(橫溪)로 고쳐 불렀습니다. 또한, 숙종 27년(1701년)에 횡계서당(橫溪書堂)을 세웠습니다.

당시 횡계서당에는 사방의 영재들이 모여들어 이들 형제로부터 학문을 배우며 인성을 닦았습니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형조참의를 지낸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 영의정을 지낸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 승지를 지낸 명고(鳴皐) 정간(鄭幹)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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