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문화·유적

-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남 산청군 생비랑면에 '도전(道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언젠가 밭 가운데 길이 생기면서 들이 온통 '길밭'이 되자 이런 지명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지금 도전리의 큰길은 도전들판에서 한참 비켜나 있습니다. 들판을 더 크게 확보하기 위해 강둑을 쌓았고, 큰길은 강둑의 반대편에 강줄기를 따라 산밑으로 굽이굽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굽어진 길가 벼랑 끝에
마애불상군이 있습니다. 도전리 마애불상군입니다.

이 마애불상군은 몇 해 전만 해도 아무렇게나 방치된 데에다가 워낙 험한 벼랑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것을 2008년에 산청군에서 진입로를 정비해 놓아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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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이곳에는 바위의 경사진 면에 30cm 크기로 모두 4단으로 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 확인된 게 총 29기라고 하며, 원래는 지금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더러 깨져 나간 채 대좌만 남거나, 머리는 간 곳 없이 몸만 남은 것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성하게 남아 있는 것들도 모두 눈을 파냈습니다. 민간에 퍼진 미신에 의한 것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훼손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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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불상은 옷이나 손 모양 등 세부 표현에서는 각기 조금씩 다른 모습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석가여래를 표현한 듯합니다. 대부분이 연꽃무늬 받침 위에 가부좌를 한 채 선(禪)의 세계에 몰입해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머리는 민머리에 큼직한 상투(肉髻))를 얹었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심하게 마멸되어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양쪽 어깨에 옷자락을 걸쳤는데, 그 표현이 그리 세련되지는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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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불상 곁에 '향제일선생(向第一先生)'이나 '보살예○(菩薩禮○)', 그리고 사람 이름인 듯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충 드러난 글자의 내용으로 보아 이 글자들은 마애불상군이 조성되었을 당시의 것이라기보다는 후세에 사람들이 복을 빌기 위해 새겨 넣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많은 불상을 무리지어 새긴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말엽이나 고려시대 초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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