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출토 돌사자상 문화·유적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 통일신라시대, 8~9세기


주박물관의 미술관 복도에 돌사자상 하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대충 한 번 힐끗 훑어보고는 그냥 지나가지만, 분황사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하는 돌사자상입니다.

이러한 돌사자상은 어디에 있던 것일까요? 신라왕릉에서도 더러 볼 수 있지만, 석탑과 석등 등에서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 돌사자상들은 한결같이 우리 특유의 해학과 사랑스러움을 지니고 있어 보면 볼수록 빙긋이 웃게 합니다.
그러면 석탑과 석등 등돌사자상등장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그것은
불교에서 사자란 두려움이 없고, 모든 동물을 능히 굴복시키는 '백수(百獸)의 왕'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 용맹함으로 말미암아 불교의 수호신 역할을 하였습니다.
- 분황사 모전석탑의 돌사자상


이제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으로 돌아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 분황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든 탑이 있습니다. 이 탑은 모전석탑으로, 현존하는 신라시대의 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이 탑의 기단 위에는 돌사자상을 포함해서 네 기의 돌짐승상이 있습니다. 동해를 바라보는 곳인 동쪽에는 물개상이, 내륙을 향한 곳인 서쪽에는 사자상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불국사 다보탑과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등에서도 기단 위의 네 모서리에 돌사자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석탑에서는 네 곳 모두 사자상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황사 모전석탑에서만은 서로 다른 모양의 짐승상이 섞여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경주박물관에 있는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이 이러한 의문점을 푸는 어떤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 통일신라시대, 8~9세기


우선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에서는 돌사자가 딛고 앉아 있는 받침이 팔각형입니다. 반면에 지금 분황사탑의 돌사자상에서는 이 받침이 모두 사각형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이 지금 분황사탑의 돌사자상과는 같은 곳에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분황사탑에서의 돌짐승상이 원래 모습 그대로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의심스럽습니다.
또한, 지금 분황사탑에 있는 두 돌사자상이 원래는 헌덕왕릉에 있던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그렇다면 만일 경주박물관의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이 원래는 분황사탑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지금 분황사탑의 돌짐승상이 원래 있던 돌사자상대신에 놓인 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러한 추정에도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의 추정 연대를 8~9세기경으로 보고 있으니, 분황사탑의 조성 연대와 서로 맞질 않습니다. 분황사 출토 돌사자상의 추정 연대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분황사탑이 만들어지고 나서 100여 년이 지난 후에 이 돌사자상을 만들어 그곳에 놓았던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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