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세상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사천 매향비 문화·유적

- 사천 매향비 전경


려 말에서 조선 초에 바닷가 마을의 갯벌에 향나무를 묻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매향(埋香) 혹은 침향(沈香)이라고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좋은 향나무를 골라 다듬어 펄 속에 묻어두면, 천 년이 지난 후에 향 가운데 가장 귀한 침향(沈香)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주위에 있는 흔한 것이라도 마음을 모은 소망과 세월의 무게가 쌓이면 고귀한 것이 된다는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향나무를 묻을 때엔 아무 곳에나 묻지는 않았습니다. 불가에 전해지는 바로는 매향의 최적지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매향이 이루어지는 곳은 섬이나 해안지역이어야 하고, 구체적으로는 개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매향을 하기 위해 수백에서 수천 명이 함께 모여 계(契)를 맺고 원(願)을 세웠습니다. 즉, 매향계(埋香契)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매향 후에는 그곳에 매향비를 세웠습니다.

- 사천 매향비


이러한 매향비는 전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이로 미루어볼 때 미래의 복을 축원하는 매향 행위가 여러 지역에서 폭넓게 행해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매향의 풍습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라 발견되는 비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고려 충선왕 1년(1309년) 강원도 고성 삼일포 매향비, 조선 태종 5년(1405년) 전남 신안군 암태도 매향비, 세종 9년(1427년) 충남 서산 해미 매향비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 있는 사천 매향비는 고려 우왕 13년(1387년)에 세웠으며, 보물 제6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사천 매향비


사천 매향비에는 매향비를 세우게 된 내력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승려와 신도 4,100명이 계를 이루어 세상이 평안하기를 바라며 매향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곳에 매향비를 세운 것은 고려 말에 그들이 겪었던 힘든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마련이니까요.

- 매향비 곁을 흐르는 도랑


매향비는 주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천 매향비가 있는 이곳은 지금 바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륙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매향비가 있고, 바로 곁으로 가화천에 작으나마 물줄기를 보태는 도랑이 흐르고 있으므로, 고려 우왕 때 이곳은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었을 것입니다.
- 비문 일부


참고로 비에 새겨진 글자와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행.   千人結契埋香願王文/
2행.   夫欲求无上妙果必須行願相扶有行无願其行必/
3행.   孤有願无行其願虛設行孤則果喪願虛則福劣二業/
4행.   双運方得助○妙果貧道與諸千人同發大願埋/
5행.   沉香木以待 慈氏下生龍華三㞧持此香達/
6행.   奉獻供養弥勒如來聞淸淨法悟无生忍/
7행.   成不退地願同發人盡生內院訂不退地慈氏如/
8행.   來見爲我訂預生此國預在礿㞧聞怯悟/
9행.   道一切具足成其正覺/
10행. 主上殿下萬萬歲國泰民安         達空/
11행. 洪武廿年丁卯八月廿八日埋   刻金用/
12행. 優婆塞優婆夷此丘此尼         書守安/
13행. 大化主覺禪/
14행. 都計四千一百人 個中/
15행. 宝上/

천인결계 매향 원왕문

무릇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결과를 바란다고 한다면, 간절하게 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서로 일치되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만약 간절하게 바라는 바도 없이 행동만 하게 된다면, 그 행동은 아무런 호응도 없는 외로운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아무런 행동도 없이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면, 그러한 소원과 바램 역시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누구도 호응하여 주지 않는 고독한 행동은 죽은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허망하게 비는 소원은 결과적으로 그 복이 빈껍데기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간절하게 원하는 것과 더불어, 둘째 많은 이들이 호응하는 행동의 움직임, 이 두 개의 기운이 함께 해야 원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소승은 이러한 까닭에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침향목(沉香木)을 묻으면서 먼저 커다란 소원을 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미륵여래님이 이 세상 낮은 곳으로 내려와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이루신다는 용화법회를 세 번이나 개최하였고, 지금 그러한 세계를 간절하게 기다리면서 이 향을 묻어 미륵여래님에게 봉헌하여 공양하고자 합니다. 미륵여래님의 청정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이 인생의 인고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아무도 이 땅에서 물러서지 않고 이 땅을 지켜나갈 것임을 모든 사람들이 뜻을 합하여 대동발원(大同發源)합니다.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목숨을 다하여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할 것을 발원하며, 이 땅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당신께서 보시고 우리들을 위하여 이 땅에 나시어서 이 약회(禴會) 위에 계시면서 당신의 진리를 듣고 깨닫게 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르게 깨닫도록 하고 계십니다.

무궁하도록 임금님의 만세와 나라의 태평성대, 그리고 백성의 편안함을 비옵니다.

고려 우왕 13년(1387년) 정묘 8월 28일에 묻다.

글 지은이 달공, 글 쓴이 수안, 글 판이 김용
기혼 미혼 남녀 불자 도합 4,100인 대표 대화주 각선
천지신명(寶-불,법,승)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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