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연리근 문화·유적

- 대흥사 연리근


흥사 천불전 아래 길옆에 두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발길을 멈추고 안내판을 바라보면 '대흥사 연리근'이라 쓰여 있습니다. 두 나무의 뿌리가 서로 이어져 한몸이 되었으니,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연리근(連理根)'이란 두 나무의 뿌리가 서로 이어진 것을 말하며, 가지가 서로 붙은 것을 '연리지(連理枝)'라 합니다. '연리지'라는 말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772~846)의 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나라 제6대 현종(玄宗, 685~762)은 712년부터 756년까지 44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재위에 있었습니다. 그의 치세를 두 시기로 나누는데, 전기 28년은 연호를 개원(開元)으로, 후기 16년은 연호를 천보(天寶)로 하였습니다. 개원의 시대는 성당(盛唐)을 이루는 훌륭한 정치를 하였으나, 천보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양귀비와 사랑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아들 수왕의 부인으로, 현종에게는 며느리였습니다. 현종은 부인이 죽자 양귀비의 미모에 눈이 어두워 아들 수왕에게는 다른 왕비를 들이게 하고, 양귀비를 도가(道家)에 출가시킨 후 다시 입궁시켜 자신의 왕비로 책봉하였습니다. 이때 양귀비는 27세, 현종은 61세였습니다. 이후 현종은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755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이 난으로 피난길에 오른 현종에게 측근의 무장들이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국정을 어지럽힌 죄로 양귀비의 처벌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사랑하여 마지않았던 그녀를 강권에 못 이겨 본의 아니게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 대흥사 연리근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뒤, 806년 백낙천(白樂天, 772~846)이 태원의 현위로 전근되었을 때 선유사를 유람하면서 왕질부라는 사람이 술잔을 권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세상에서 아주 드문 일이지요. 하지만 출중한 글재주가 있는 이가 써내지 않는다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묻혀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 겁니다. 현위는 시재주도 뛰어나고 감정도 풍부한 분이니 한번 붓을 휘둘러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하여 현종과 양귀비 사이에 있었던 비련의 사랑 이야기는 7언 120구의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恨歌)'로 태어났습니다. 백낙천이 살아 있을 당시에 벌써 삼척동자들도 장한가를 불렀고, 그 후 천여 년의 세월 동안에도 그 노래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로 말미암아 안녹산의 난은 정사(正史)의 기록보다도 오히려 이 시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게 되었습니다.

장한가의 끝 구절은 이러합니다.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함께 즐길 때           七月七日長生殿
야밤 삼경 남모르게 주고받은 말이지요.     夜半無人私語詩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였고,         在天願爲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했어요.         在地願爲連理枝
천지가 장구해도 다 할 때 있으련만,          天長地久有時盡
이 한 만은 면면히 그칠 날이 없으리라.      此恨綿綿無絶期

이 장한가에서 나온 말이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입니다. 비익조는 암수가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지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이고,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잇닿아 붙어 하나의 몸이 되어 서로 통하여 있다는 나무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부부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는데, 보통 '비익연리(比翼連理)'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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